주최측에선 50만이 모였다고 하지만 경찰에선 겨우 5만이라고 뻥을 치고 있다. 내가 보기엔 6월 10일(주최측 추산 70만명)보다 더 많이 모였다고 느꼈는데 그건 아닌가보다. 아무튼 사람이 정말 많았다. 권해효, 최광기 사회의 문화제가 끝난 후 행진이 시작되었는데,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아직 행진대열이 시청을 다 빠져나가지도 못했는데 선두 대열이 이미 시청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공지가 있을 정도였다. 모두 웃고 난리도 아니었다.
근데 그 공지는 잘못된 것이었다. 행진 대열은 선두가 시청으로 다시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대다수의 일반 참가자는 종각 쪽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종각역 사거리에서 시작해 조계사를 지나 인사동 입구를 거쳐 종로경찰서 앞에서 경찰들을 떨게 만들어주었고, 안국역에서 다시 낙원상가 쪽으로 방향을 틀어 종각역으로 향했다. 난 거기서 집에 왔다.
집회 참가자가 아닌 일반인들, 그러니까 구경꾼들이나 동네 주민 같은 경우는 이런 행진이 조금씩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이해는 간다. 그러나 잠깐의 불편은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걸 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은 장사 안되니까 촛불 그만 들라는 삼청동/가회동 상인 연합인가 뭔가 하는 작자들보다는 나은 편이다. 또 그런 사람들은 문정동 뭐시기에서 장사 안 된다고 보도자료 뿌리는 놈들보다 훨씬 선한 편이다.
6월 10일 집회 때는 인왕산에 올라 촛불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었다고 실토한 우리의 대통령님은 어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장마비가 내리다 말아서 정말 아깝다고 생각하고 말았을 확률이 가장 크지만, 의외로 뭔가 깨달았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어제 청와대에서 대책회의 쪽과 접촉을 시도하다가, 그게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걸 직감한 대책회의 쪽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희망사항에 가까운 얘기일지 모르나, 청와대가 뭔가 좀 깨달았으면 한다. 이젠 좀 알 때도 되지 않았나? 아직도 저 많은 양초 누구 돈으로 산 거냐고 의심하고 있을텐가 이 사람아?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는 유통되고 있고, 환율 압박으로 하반기도 물가는 폭등 예상이고, 북핵 해빙 모드에서 한국만 왕따될 가능성 농후하고, 그리고, 진짜 무서운 건 방송 때리기에 이은 민영화 추진이다. 아, 참 X같다. 어제 '사실은'이 대놓고 조중동 깠다는데 다시보기로 좀 봐야겠다.
주로 진보신당 칼라TV를 통해 촛불집회를 간접참여하곤 했다. 6월 1일에 처음 사용되고, 최근에 다시 전면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물대포는 항상 '경외'의 대상이었다. 어떻게 저걸 사람한테 쏠 생각을 하지? 그들의 심성은 경이롭게도 '경외'적이다. 다시 말하면,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잊게 만드는...
우리가 상상하는 물과 그것을 발사하는 것의 결합체는 대개 아름답거나 잔잔한 광경들이다. 가령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가 가게 안의 심은하를 응시하며 가게 유리창에 호스로 물을 뿌리는 장면이라든지, 봄철에 주로 볼 수 있는 빌딩 유리외벽을 청소하는 물 줄기라든지 하는 것 말이다. 그런 물은 잔잔히 뿌려진다. 현실 속에서 조금 세게 뿌려지는 물이란 어떤 지저분한 것들을 '쓸어버릴 때' 사용된다. 홍수 뒤에 남아있는 진흙 바닥을 쓸어낸다든지, 꽤 센 수압으로 작은 도로 위의 쓰레기들을 쓸어내린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저들은 겨우 비옷밖에 입고 있지 않은 우리를 쓸어버리려고 한다. 우리는 쓸어내려가야할 '지저분한 것'이거나 '더러운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거센 물대포로도 흔들림이 없다. 다만 물에 흠뻑 젖으면 집에 돌아가는 길이 좀더 무겁다.
수공전은... 글쎄 누군진 모르겠지만 그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사람은 제갈량이 현신한 것이 아닐는지. 말이 필요없는 6월 28일의 하이라이트였다.
2. 폭력
월요일, 그러니까 오늘자 신문은 만평을 통해 이명박 정권이 5공과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조폭식 마인드가 그 공통점의 핵인데, 저항하고 반항하는 무리들이 닥치지 않으면 닥칠 때까지 몽둥이로 패라는 것이다.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거꾸로 적용하고 있다. 우리는 미치지 않았고, 허구헌 날 대국민 담화나 발표하고 경찰력 동원해서 무력 진압하는 쪽이 미친 게 틀림없다.
토요일 자정이 지나고 곧 벌어진 틈새를 이용해 전경 수십 명이 밀어닥쳤다. 그들의 첫 걸음은 위세당당했지만 곧바로 쪽수에 밀려 시민들에게 둘러쌓였다. 제 아무리 전경이라해도 총이 없다면 그 순간을 모면할 수 없다. 약간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고,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시민들이 '반격'했기 때문이다. 이 '반격'은 곧 불법집회-촛불집회의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될 것이고, 월요일자 조중동의 1면을 장식할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 될 것이었다. 그들의 방법은 악랄하지만, 단순하다.
우리의 현대사는 87년 이후로 폭력의 제거를 위한 공동의 노력이었다. 노태우 정부에서도 특히 90년 3당 합당 이후 연쇄적으로 파업과 집회가 이어졌고 91년에는 강경대와 김귀정 등이 백골단 등의 폭력진압에 사망하기도 했다. YS 때에도 연세대 사건 등 여러 폭력적인 집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87년 이후의 간헐적인 폭력은 보수 언론과 (당시) 여당의 뭇매를 맞고 곧바로 사그라들었지만, 공권력에 의한 폭력은 애석하게도 계속되었다. 비록 오늘날과 같은 '대규모'의 폭력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지난 20여년간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삶의 양식에 저항하여 끊임없이 들고 일어났던 우리들을 그들은 지속적으로 진압해왔다.
그러니까 87년 이후로 우리가 합의한 것은, 이제는 대규모의 폭력을 없애자는 것이었고, 특히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폭력은 영원히 기억 속에서 지우자는 것이었다. 2mb는 그러한 우리의 의식을 단 3개월만에 깡그리 짓밟고 유모차에 소화기를 분사한다든지, 팔짱끼고 누워있는 시민단체의 활동가를 밟고 짓이긴다든지 하는 짓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이러한 의식과 행동을 일컬어 '미쳤다'라는 말을 쓴다.
그래, 미친 정부. 'violence'가 '소통'이란 단어의 숨은 뜻이란 걸 역사상 처음으로 발견하신 우리의 위대한 2mb여.
3. 닛뽀니아 닛뽄
시청앞의 대치 상황은 종각 부근으로 시위대를 이동시키게 만들었고, 종로구청 근처 뤼미에르 빌딩 앞 도로에서 다시 대치 상황이 계속되었다. 기억하기로 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던 것 같은데, 이때부턴 그리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물론 일촉즉발의 여건은 갖추고 있었지만.
난 잠깐 숨을 돌릴 수 있었고, 쿵쾅거리는 심장을 조금 진정시킬 수 있었다. 경찰이 곤봉과 방패를 앞세우고 시민들을 내리찍는 모습을 눈앞 5미터 거리에서 확인하는 일은 그리 즐거운 경험이 아니다. 또 대열에서 이탈된 전경들을 둘러싸고 시민들이 겁박하는 모습 역시 그리 유쾌한 모습이 아니다. 앰뷸런스가 여러 대 도착하여 부상자를 실어나르고, 폭력 진압이 재개될 것이라는 공지가 방송되는 것도 그리 추천할만한 기억은 아니다.
종로에서의 대치는 뭐랄까, 약간 축제 분위기였고 경찰 쪽에서도 더이상의 '확전'을 원치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대신 일요일은 낮부터 미쳐 날뛰었지만.
난 새벽 3시 반쯤 종로 롯데리아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우석훈이 추천한 일본 소설 <닛뽀니아 닛뽄>을 읽기 시작했다. 마음이 평안해졌다. 소설은 재밌었고, 언젠가 한번 쓰고 싶었던 '은둔형 외톨이'에 관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국가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어서 좋았다. 소설 단평은 나중에.
지금 프레시안의 메인 화면은 다르지만, 기본 얽개는 이러하다. 산뜻해진 느낌. 프레시안의 로고는 그대로 놔두고, 메뉴바를 파란색으로 통일하였고, 각각 메뉴의 글자체를 좀더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내가 이렇게 별일 아닐 수도 있을 프레시안의 홈페이지 리뉴얼을 소개하는 것은, 이 글을 본 한 사람만이라도 프레시안을 기억했으면 하는 의미도 있지만, '나는 프레시앙'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앙이 뭐냐고? 내가 예전에 썼던 글(클릭)을 참조하길 바란다.
우리집은 나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예전부터 <한겨레>를 구독하고 있는데(구독료 내가 낸다), 나는 거기에 더해 <프레시안>에도 정기적으로 구독료를 지불하고 있다. 사실 구독료라는 개념이 '프레시앙'의 본질을 완벽히 설명할 수 없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한 달에 15,000원을 <한겨레>에, 또 10,000원을 <프레시안>에 납부한다(정기적인 수입이 없는 상태라 다른 데에 더 내고 싶어도 못낸다...). 과거에는 민언련에도 10,000원씩 회원비를 냈는데, 안 내게 된지 한 2년 정도 됐다. 회원으로 이름만 등재돼 있고 회원비도 안 내는 내가 참으로 부끄럽다. 빨리 취직을 하든가 해야지 이거 원...
요새 언론쪽에 말들이 많다(이문열은 그 입 다물라). 시중 잘 든다는 최아무개 씨가 KBS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고 2mb는 인터넷을 뿌리부터 불신하고 있는 상태이며 또 촛불집회로 촉발된 안티-조중동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기도 하다. 한겨레와 프레시안, 민언련 등은 잘못된 언론정책, 즉 권력에 의한 시대착오적 언론 장악의 행태를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물론 경향신문(미.. 미안하다)과 오마이뉴스 및 기타 매체 여러군데에 열심히 싸워주고 있기도 하다. 계속 싸워야 하고, 공영방송의 독립성은 계속 보장되어야 하며, 권력은 언론 장악의 음모를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 그게 '선진화'다.
이번 주말에는 촛불 들고 KBS 앞으로 가봐야겠다.
덧- 그런데, 프레시안(Pressian)의 뜻이 무엇인지는 잘 알려져 있는 것 같지 않다. CJ에선가 동일한 이름의 육류 브랜드가 있던데, 그런 거에 속지 말고. Pressian은 정확히는 PRESSian이고 'PRESS + Internet Alternative News'의 합성어로서 '대안언론을 만드는 신문쟁이들'이란 뜻이라고 한다. 기억해두자, 대안언론을 만드는 신문쟁이들, 프레시안을.
촛불집회인지 촛불문화제인지 정확한 이름은 잘 모르겠다. 촛불을 들었다는 게 중요할 뿐 이름이 뭐 중요하랴.
오늘도 주말을 맞아 촛불집회는 어김 없이 계속되고 있다. 어제는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까지 진출하여 KBS 및 딴나라당사 등을 순회했다고 한다. '당정청'의 무개념 행태가 지속될 게 뻔한 상태에서 촛불이 쉽사리 꺼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곧 장마가 시작될 것(청와대가 애를 태우며 기다리는 장마!)이며 불볕 더위와 함께 바캉스 시즌도 시작될 것이다. 그렇다고 촛불이 쉬 꺼질 것 같은가? 아니다. 다들 잘 알다시피 7월에는 부시가 방한할 가능성이 크고, 후진타오의 방한은 7월로 확정돼 있다. 후진타오의 방한 때 한-중 FTA가 체결 혹은 협상 시작될 가능성이 큰데, 이는 촛불에 기름을 드럼통으로 붓는 격이 될 것이다. 복날에는 삼계탕을 먹어 건강을 관리한다는 옛 선조들의 지혜는, 촛불을 들어 나라의 건강을 걱정한다는 현대인의 우화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각설하고, 부시보다 무서운 게 후진타오인데, 2mb가 방중했을 때 선물로 2mb에게 '따오기'를 주었다. 중국의 동물외교는 유명한데,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사용되는 판다가 특히 그렇다. 판다는 여전히 중용되고 있고 이번 중일 관계 개선에도 판다가 한몫한 바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한국에게 왜 따오기를 주었을까? 천연기념물 198호이기도 한 따오기의 학명은 'Nipponia nippon' 되겠다. 한국의 체면에 대놓고 가운데 손가락을 날린 셈인데, 미국과 일본에 편중된 한국의 외교를 엄중히 경고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은 후진타오 2기 출범식에도 화환을 보내지 않았고, 쓰촨성 지진 때에도 미국이 긴급 구호자금으로 10억 달러를 내놓겠다고 발표한지 사흘만에 100만 달러를 내놓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중국의 자존심을 긁어놓은 바 있다(강남 아파트 한채 값도 안 되는 돈으로 무슨 복구를 하란 말인가?). 그것 뿐인가? 주중국 대사였던 김하중을 통일부 장관에 임명함으로써 주중국 대사의 권위를 한층 격하시켰고, 새 중국대사로 듣도보도 못한 듣보잡에 가까운 인물을 임명함으로써 또 한번 중국을 건드렸다.
2mb 정부의 외교는 아마추어 이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하는데, 이번 쇠고기 협상에서도 그렇고 일본에게 뒤통수 맞은 것도 그렇고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어디 외교뿐이랴? 노무현 정부를 아마추어라고 조롱하던 인간들이 권력을 잡고 보니까 그 '아마추어'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은 결과적으로 촛불집회의 배후로 작용한 셈이다. 철 지난 신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짓거리도, 성장률에 매달려 환율 상승을 방치 및 조장해 물가를 잡지 못한 것도 다 그 배후라고 볼 수 있다. 촛불을 들 '거리'는 얼마든지 남았다. 명박 정부의 헛지랄은 계속될 것이고, 여당은 권력 투쟁에 몰두하고 있고,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제 2의 환란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제 침체가 올 확률은 계속 커지고 있다. 어떻게 촛불을 그만 들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주말마다 수만 여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노무현이 말한 대로 정당한 민주주의 절차에 의해 선출된 정부를 물러나라고 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은 일리 있다. 2mb 퇴진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진출하다가 크고 작은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청와대 진출만이 능사는 아니다. 2mb 퇴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라를 말아 먹겠다고 나온 인간을 두고, 경제를 살리겠다니까 오 그렇구나 하며 2mb가 메시아인 마냥 그를 찍어준 국민들의 행태와 똑같다. 가령 퇴진한다고 치자(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럼 재선거를 실시해야 하는데, (대통령을 할만한 '인물'도 없지만) 누가 대통령을 한다고 해도 (개인적인 평가지만) 노무현보다 잘 하기는 힘들고, 노무현이 그렇게 욕을 먹었던 것처럼 지금의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똑같은 문제가 계속 반복될 것이다. 문제는 시스템이고 더 큰 문제는 그 시스템을 바꾸기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은 정치의 복원이고, 지금 여의도는 개판이지만 그 개판을 사람판으로 만들기 전까지는 희망이란 없다고도 할 수 있고 또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루쉰에 따르면 희망이란 본디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희망이란 게 원천적으로 구현되지 않는 시스템을 갖춘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문국현이 '사람이 희망이다'란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정치에 도전했지만 그도 역시 시스템 바깥의 반항아에 불과할 뿐이어서 회충옹과 연대하는 기막힌 술수를 벌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진보정치에 희망이 있을까? 그랬으면 참 좋겠지만 별로 그럴 것 같진 않다. 현실 정치가 엉망인 가운데, 즉 보수 정치가 규정하기에 따라 200여석에서 290여석까지 과점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촛불'은 유일한 희망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으로 대의 민주주의의 결함은 처절하게 드러난 셈이고, 언론운동이 10년 동안 해도 안 되던 조중동에 대한 직접 행동이 순식간에 활활 불타오르고 있기도 하다. 촛불을 어떻게 끌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촛불은 '이명박 퇴진'이라는 구호의 탈을 쓴 채로 토론과 논쟁이라는 정치적 무기를 벗삼아 정치의 복원에 나섦으로써 그 의의를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달라붙는 날파리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면서 말이다.
중고생은 물론 초딩조차 싫어한다는 전대미문의 정부, 국민 지지율 10%대에 이어 전문가 정책평가에서 4%의 지지율을 선보인 경악스러운 정부이지만, 그렇게 밉지만 우리가 뽑은 우리의 대통령이다. 이명박 정부가 성공해야 한국이 평안해진다는 일부의 견해는 틀린 말이 아니다. 현 정권의 오류를 적극적으로 제기해나감으로써 그들의 쌩지랄을 최소하하고, 2010년 지방선거부터 제대로 된 인물을 뽑고 또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다시 멀고 먼 길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일단은 촛불을 들어 그 길을 밝히고 동지들과 어깨 동무하고 차근차근 나아갈 일이다.
이번 집회는 여러모로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부 활동가들이 고백하듯이, 지도부가 필요치 않은 아니 지도부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전대미문의 집회가 출현한 것이다. (전술의) 지시와 (명령의) 복종으로 일관되었던 과거의 투쟁 양상은 이미 지나가버린 유물이 되어버린 듯하다. 성난 민심을 '조정'할 수 없는 것처럼, 성난 민심의 행방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구나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사실은, 이 모든 책임이 2mb에게 있다는 것이다. '2mb the GREAT'의 능력은 정말 상상 그 이상이다. 우파의 우두머리가 새로운 유형의 운동 방식을 창조해내기 위하여, 정권 출범 3개월만에 지지율 10%대 기록이라는 놀라운 자기 희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들, 온 식구가 함께 나온 가족들, 옷장 속의 먼지쌓인 예비군복을 꺼내입은 예비군들, 그리고 초/중/고/대학생들과 직장인들까지. 이 성난 민심을 어떻게 할텐가? 고관대작님하들은 집회 현장에 한 번이라도 가보았는가? 그들이 어떤 눈빛을 하고 있고 어떤 구호를 외치는지 관심이나 있는가? 문제는 여기에 있겠다. 촛불의 배후를 밝혀내는 것(양초공장으로 밝혀졌다)보다, '1만개의 촛불'을 '동원'한 배후를 밝혀내는 것('1만의 민심'이 배후라는 것이 밝혀졌다)보다 사과 한 마디 하는 게 훨씬 더 쉽고 빠른데 말이다. 그게 그들이 그렇게 부르짖던 '실용' 아닌가? 쇠고기 부실 협상과 한-미 FTA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청와대 대변인밖에 없는 상황에서, 참다참다 기어코 들고 일어난 민심을 달래줄 어떤 '배후'가 있을리 만무하다. 사과할 마음도 없고, 사과할 방법도 모르고, 사과란 먹는 것인줄만 아는 나쁜 정부.
비폭력을 외치는 시위대도 폭력을 두려워한다. 이기심과 이타심이 절묘하게 결합된 지금의 시위대에게도 방패와 곤봉과 물대포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두려움' 그 자체일 것이다. 경찰은 엿같은 집시법을 되내이며 강제해산을 예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물러서지 않는다. 정말 대단하고, 개인적으로는 부끄럽다. 북청 물장수처럼 '불법'과 '해산' 및 '강제진압'을 얘기하는 경찰들 앞에서, 시위대는 "노래해, 노래해"라며 그 목소리를 조롱하고 '아침이슬'이나 '임을 위한 행진곡' 혹은 '애국가'를 부르면서 저항한다.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이, 명, 박"이라는 노래를 아무 거리낌 없이 불러 제끼고, "이명박은 물러가라, 물러가라"라는 익숙한 선율의 노래를 즐겁게 합창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였지만, '폭력'에는 '노래'로 대응하는 방법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조중동은 '왜 쇠파이프가 등장하지 않는 거지?'하면서 '설마 배후가 없는 게 아닐까?'라고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현재도 오마이뉴스 생중계에는 '프레스센터 앞 시민 4천명 경찰과 대치 중'이라는 설명과 함께 축제와도 같은 시위대의 모습이 전해지고 있다. 내가 있을 자리는 저 자리이거늘, 난 왜 여기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자, 나가자, 나도 힘닿는 데까지 함께 하련다.
오직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5·18 국립묘지 사방팔방에 경찰력을 배치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게 정당한가. 시민을 볼모로 오직 대통령 1인의 안위에만 골몰하는 경찰의 모습은 사뭇 안쓰럽기까지 하다.
2003년에 같은 장소에서 대통령이 한총련에 포위되었던 악몽이 기억났을까. 그땐 한총련만 난리법석을 피웠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을 거다. 온 광주시민이 들고 일어나 2MB를 에워쌌을지 모를 일이다. 일개 주사파 집단의 광기를 유발한 전임 대통령은 그렇다 치자. 온 국민의 마음에 불을 지른 2MB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해도 이상할 게 하나 없다. 따라서 경찰의 대응은 정확했다.
알아서 기었든 아니든, 경찰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것이다. 경찰은 무엇을 하는 존재인가. 경찰법 제1장 제3조는 다음과 같다.
"국가경찰은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와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 치안정보의 수집, 교통의 단속 기타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그 임무로 한다."
경찰이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는커녕 대통령 1인을 결사적으로 수호하고 있다. 이게 대한민국 경찰의 현모습이다. 경찰 앞세우다가 좋은 꼴 본 사람 별로 못 봤다. 2MB 하시는 말씀 좀 보게나. "나 때문에 어제 여러 사람이 고생했다"란다. 기가 차 말도 안 나온다.
광우병 파동으로 인한 자발적인 촛불집회에 대응하는 경찰의 모습을 보라. 집회장소에 촛농 떨어졌다고 시비거는 보수 언론보다 촛불 하나에 두려움을 숨기지 못하고 과잉 대응하는 경찰이 더욱 처량하다.
공직선거법을 적극 해석하여 별 영향도 없고 의도도 없는 선량한 누리꾼들을 조사하고 고발하는 모습은 어떤가.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법조항의 문제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실적 올리기에 급급한 그들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경찰력을 과잉 사용하지 말라. 또 경찰은 권력에 굴종하지 말라. 성난 민심을 달래기보다 무력진압에만 혈안이 되었다가는 아르헨티나의 델라루아처럼 비극적인 종말을 맞을 수도 있다. 이건 결코 공상이 아니다.
민주화의 진전 이후 경찰 역시 민중의 지팡이로서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줄만 알았다. 허나 정권이 바뀌자마자 민간사찰에 나서는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학가 서점에 나타나 '빨갱이 잡으러 왔소'하며 광고하고 다니는 꼴은 우습기까지 하다. 아직 공안 부서를 유지하고 있는 경찰은 잠시 그 더러운 얼굴을 분칠한 것뿐 언제든 다시 폭압적인 본능을 분출할지 모른다.
국민은 평온한 나날을 염원한다. 주말 밤 시간 내어 촛불을 들기 원하는 국민은 하나도 없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경찰, 나아가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쇠고기 재협상이 지지부진할 경우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돼 국내 유통될 경우 민심은 폭발할 것이고 거리는 촛불로 뒤덮일 게 뻔하다. 그럼 경찰은 어떻게 할텐가. 전국의 모든 경찰력을 총동원하여 어떻게든 '억압'하고 '진압'할 것인가.
공권력(公權力)을 그따위로 남용하라고 국민이 정부에 주권을 위임한 게 아님을 경찰과 정부는 알아야 한다. 쇠고기야 그렇다 치고 대운하는 또 의료보험 민영화는 어쩔 셈인가. 독도 문제에 북한 문제까지 첩첩산중이다.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는 정부라지만 최소한 국민의 목소리에는 귀기울여야 할 것 아닌가. 대통령이 절대군주가 아님을, 초딩들도 다 아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기 바란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내가 일하는 책방으로 사복 경찰들이 자주 들락거린다. 그들은 내게 말을 걸지도 않고 30분 가까이 책방을 구석구석 살핀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사회실천연구소에서 내는 ‘실천’, ‘사회주의자’, ‘사회주의 노동자’, 다함께 기관지 ‘맞불’,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내는 책들을 찾았다.
난 1993년 봄부터 책방을 꾸려오고 있다. 그때는 김영삼이 대통령이었다. 그땐 이런 경찰들이 일주일에 서너 번은 왔다. 스스로 어디서 일하는지 밝히기도 했다. 책방에서 가까운 경찰서를 비롯해서 국가정보원, 군기무사 사람들도 왔다. 그들이 사가는 책들은 사회주의 생각이 들어있는 책들이 많았지만 책방에서 책을 파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이 있나 싶었다.
그러다 난 1997년 4월 15일에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 판매 죄로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서울구치소에서 한 달을 살았다. 그때 문제가 됐던 책들은 ‘전태일 평전’, ‘월간 말’, ‘철학에세이’,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같은 책들이다. 그 책들은 지금도 큰 책방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다. 하지만 큰 책방 대표들이 잡혀 갔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날 서울에 있는 인문사회과학책방 대표들 세 사람이 한꺼번에 끌려갔다. 그 뒤로 조직 사건이 예닐곱 개 터졌다. 그렇게 공안 바람을 일으켰지만 그해 대통령에서는 김대중이 뽑혔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면서 책방에 뜸하게 오던 공안 경찰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다시 활개를 친다.
국가보안법은 일제강점기에 만든 치안유지법이 그 어머니다. 그 법은 일제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을 죽이려고 만들어졌다. 그 법을 1948년 12월 1일에 이승만이 다시 고쳐 만들었다. 올해로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지 60여년이 된다. 그동안 그 법으로 죽거나 옥에 갇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러운 정권을 지키려고 만든 법이, 세상을 맑고 밝게 바꾸려는 사람들을 수없이 잡아 가두고 죽이는 일에 쓰였다.
난 국가보안법 제7조 1항과 5항에 따라서 벌을 받았다. 내가 국가 존립, 안전, 자유 민주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책을 팔았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사람들이 마르크스가 쓴 ‘공산당 선언’을 읽으면 모두 공산당원이 돼서 총을 들고 나가 이 나를 뒤집어엎을까. 그렇게 쉽게 세상이 바뀐다면 진짜 살맛나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럼 돈에 눈먼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가 좋다고 떠든다 해서 모든 사람들이 이 더러운 세상에서 끽소리도 안 하고 살까.
아무튼 책방 일꾼이 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가. 오히려 대운하를 만들어 자연과 사람들을 다 죽이려 하고, 백성들이 먹고 죽을병에 걸릴지도 모르는 미국 소를 자기들 마음대로 마구 들여오겠다는 이명박 정권이 이 나라를 구렁텅이에 빠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는 그것을 지키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뿌리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한다. 내가 국가보안법으로 또다시 끌려가서 양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운동에 불을 지필 수 있으면 좋겠다.
헌법에도 보장되었듯이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사상과 양심에 따라 살 수 있어야 한다. 먹을거리를 일구는 농사꾼과 이 땅 목숨붙이들이 사는 데 꼭 있어야 할 것을 만드는 사람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사회주의가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따라야 한다. 그런 세상이 와야 어른들 욕심으로 아파하고 쓰러지는 아이들이 없어지고,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핀다. 그런 날을 앞당기는 데 내가 꾸리는 작은 책방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2008년 4월 22일 화요일 새벽을 지나 아침이 환하게 밝은 무렵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