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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bian Hero: 축구와 정치

from 축구 2008/07/25 02:58
라도반 카라지치가 붙잡혔다. 우선 카라지치에 대한 위키백과의 설명을 살펴보자.

라도반 카라지치(1945년 6월 19일 ~ )는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전 대통령이자 시인, 정신병 학자이다. 그는 19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대통령직을 수행했으며 인종 청소를 자행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의 전쟁범죄자로 수배 중이었다. 내전 당시 카라지치는 사라예보를 공격해 만 2천 명을 살해했으며 1995년 스레브레니차에서 8천 명의 무슬림을 무차별 살인하는 등의 만행을 주도해 현상수배됐다. 2008년 7월 21일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붙잡혀 네덜란드로 후송됐다.

10여 년 동안 카라지치를 붙잡기 위해 국제 사회에서는 ICTY는 제61조 규약에 따라 그를 국제 범죄자로 지명했다. ICTY는 카라지치가 1992년 ~ 19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전쟁 범죄로 학살을 자행했다는 충분한 법적 근거가 확보됐다고 판단했으며 미국 정부는 5백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간단히 말해 개새끼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아직도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 정확한 모르고 있다. 부끄럽다. 그러나 아주 희미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긴 한데, 그건 바로 보스니아가 세르비아에게 큰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또 하나의 사실, 바로 탈이념의 시대가 낳은 '민족주의의 부활'이 안타깝게도 적대적인 행위로 이어져 소수 민족이나 타종교에 대한 대규모 학살로 이어졌다는 것.

보스니아와 세르비아는 모두 옛 유고슬라비아의 일원이었다. 이념이 민족에 앞섰던 것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카라지치는 '세르비아 민족 만세'를 외치며 보스니아인과 발칸반도에 터잡고 있던 무슬림을 지치지 않고 살해했다. 히틀러가 따로 없으며, 우리로 치면 '29만원' 정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긴 경제가 어려우니 하루에 두 끼만 먹자는 '29만원'은 카라지치에 비하며 새발의 피에 불과하겠지만. (그렇다고 '29만원'에 대한 증오가 단 1%라도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박정희보다 '29만원'이 더 우리 현대사를 치욕스럽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렇다. 그런데, 현지 시각으로 어제인 23일,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FK 파르티잔(파르티잔 베오그라드, Partizan Belgrade)과 프랑스의 명문 올랭피크 리옹(Olympique Lyonnais)의 친선 평가전이 있었다. (여담이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트드의 유명한 수비수 네마냐 비디치는 파르티잔 필생의 라이벌 츠르베나 즈베즈다, 영어로 하면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출신이다.) 결과는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고, 아무튼 이날 경기에 특이한, 아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에이에프피/게티 이미지가 그 현장을 잘 전해주고 있다. 이 두 장의 사진.





이걸 보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살인마, 전쟁 범죄자, 학살자를 그들은 대놓고 옹호하고 있는 거다. 오른쪽 사진의 빡빡머리 관중이 입은 티셔츠에 써있는 글자는 영어로 하면 'Serbian Hero'라고 한단다. 카라지치가 세르비아의 영웅이라는 것이다. 저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새끼는 파르티잔의 서포터라고.

유럽 축구의 인종차별은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도 첼시의 홈구장인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파트리스 에브라에게 어떤 첼시 관계자가 인종차별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유로 2008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기억하고 있겠지만, 녹색잔디를 둘러싼 A보드 광고판 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SAY NO TO RACISM. 2006 독일 월드컵에도 마찬가지의 문구가 공식적인 표어로 채택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종차별은 존재하고 있다. 물론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몇 가지 사례를 더 살펴보자.

2005년 1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코 마드리드의 '마드리드 더비'가 열린 비센테 칼데론 스타디움에서, 아틀레코 마드리드의 안방 팬들이 상대편의 왼쪽 윙백인 호베르투 카를루스를 집중적으로 능멸하는 인종차별적인 노래를 불렀다.

2004년 11월, 레알 마드리드의 안방경기장인 베르나베우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페인과 잉글랜드의 국가대표간 경기에서도, 흑인선수인 잉글랜드의 숀 라이트-필립스와 애슐리 콜을 능멸하는 소리가 나와 FIFA는 스페인축구협회에 10만 스위스프랑의 벌금을 부과했다.



최근에도 올랭피크 리옹 소속의 밀란 바로시가 인종차별적인 제스처를 취한 바 있다.


뭐 열거하자면 이 글이 꽤나 길어질 것이다. 그런데 어디 인종주의 뿐인가. 유럽 축구에는 파시스트도 있다. 가장 유명한 선수로는 이탈리아의 파올로 디 카니오가 있겠다. 04-05 시즌 세리에A 라치오 소속이던 디 카니오는 AS 로마와의 경기에서 '파시스트식 경례'로 골 세러모니를 했다. 이때는 내가 무려 일병이었을 때인데, 하도 어이가 없어서 신문 스크랩을 다 해놨다. 중앙일보 2005년 3월 12일자.

이탈리아 출신인 디 카니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다 올 시즌 라치오에 입단한 정상급 공격수. 그런데 1월 7일 AS 로마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웃통을 벗고 서포터를 향해 오른팔을 쭉 뻗었다. 나치와 파시스트를 연상케 하는 동작이었다. … 디 카니오와 라치오의 구단주 클라우디오 로티토가 "단순한 골 뒤풀이였다. 정치적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소용없었다. 디 카니오가 자서전에 "무솔리니의 이념에 푹 빠져 지냈다"고 쓴 점에 비춰 결코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기사는 라치오에 대한 '일반적인' 사실도 덧붙이고 있다. "라치오는 1940년대에 독재자 무솔리니가 직접 경기장에 나와 응원한 팀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홈팬들이 흑인선수들을 야유하는 등 인종차별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구단으로 악명이 높다."





디 카니오는 이후 유벤투스전, 리보르노전에서 똑같은 제스처를 취해서 전 유럽의 분노를 일으켰고, 파문이 확산되자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은 '파시스트이기는 하지만 인종주의자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거 인간이 왜 이 모양이야?) 그리고 Wikipedia에 따르면, 디 카니오는 팔에 "DVX"라는 문신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라틴어로 Duce, 즉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한다.


뭐 그렇다. 인종주의건 파시즘이건 어디까지나 일차적으로는 개인의 성향 문제이니까. (우리도 지나가는 외국인 노동자를 보면 일단 피하고 보는 그런 면이 있는 게 사실 아닌가.)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런 발언들과 제스처들로 인해 측정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글픔을 느끼고 또 그것을 넘어 분노를 느끼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축구만 잘 한다고 다 축구선수냐? 당연히 아니라는 것이다. 인종주의와 파시즘 모두 사라져야 할 것이다. 후자야 유럽에 극우파가 다시 득세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지만, 인종주의는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도대체 언제까지 흑인 뭉개면서 살아갈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한 언론은 "이런 일은 한때 극우정당이 집권했던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국제축구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위 인종차별 사례 두 건도 출처 같음). 그런데 동유럽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국제사법재판소에 1급 전범으로 기소되어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을 게 분명한 카라지치가 잡히자 마자 말이다. 세르비아는 일단 반성을 좀 해야겠고, 파르티잔도 라치오 꼴 나지 않으려면 서포터 관리 좀 잘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옛 유고슬라비아의 국방부 소속이었다는 파르티잔이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본산일지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마디. 파르티잔과 친선 경기를 가진 올랭피크 리옹의 전도유망한 신예 미드필더 미랄렘 피야니치Miralem Pjanić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국적을 갖고 있다. 그는 문제의 파르티잔과의 경기에 출전했는데, 분명 관중석에 걸린 거대한 카라지치 그림의 깃발을 봤을 것이다. 피야니치는 어릴적 보스니아 내전을 피해 룩셈부르크로 이주한 바 있는 선수(이기 전에 사람)이다. 불행한 정치 현실에 조국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는 그날 어떤 기분이었을까? 축구고 뭐고 당장 관중석으로 쳐들어가 다 패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같이 보면 좋은 글: 사커라인, 레알 마드리드의 암적인 존재 '울트라 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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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 1차 스페인 축구협회 / 2차 꾸레코리아의 '꾸레'님
2. 한글로 바꿨음. 원문 보기를 누르면 스페인어로 나옴
3. 스페인어의 Jornada, Fecha는 각각 영어의 'Day', 'Date'. Jornada는 '라운드' 정도로 보면 됨
4. ATHLETIC CLUB은 아틀레틱 빌바오임.
5. 엘클라시코는 두껍게 표시



라운드 1  - 날짜: 2008년 8월 31일
누만시아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2  - 날짜: 2008년 9월 14일
F.C. 바르셀로나 v 라싱

라운드 3  - 날짜: 2008년 9월 21일
스포르팅 히혼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4  - 날짜: 2008년 9월 24일
F.C. 바르셀로나 v 레알 베티스

라운드 5  - 날짜: 2008년 9월 28일
에스파뇰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6  - 날짜: 2008년 10월 5일
F.C. 바르셀로나 v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운드 7  - 날짜: 2008년 10월 19일
아틀레틱 빌바오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8  - 날짜: 2008년 10월 26일
F.C. 바르셀로나 v 알메리아

라운드 9 - 날짜: 2008년 11월 2일
말라가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10  - 날짜: 2008년 11월 9일
F.C. 바르셀로나 v 레알 바야돌리드

라운드 11  - 날짜: 2008년 11월 16일
레크레아티보 우엘바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12  - 날짜: 2008년 11월 23일
F.C. 바르셀로나 v 헤타페

라운드 13  - 날짜: 2008년 11월 30일
세비야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14  - 날짜: 2008년 12월 7일
F.C. 바르셀로나 v 발렌시아

라운드 15  - 날짜: 2008년 12월 14일
F.C. 바르셀로나 v 레알 마드리드

라운드 16  - 날짜: 2008년 12월 21일
비야레알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17  - 날짜: 2009년 1월 4일
F.C. 바르셀로나 v 마요르카

라운드 18  - 날짜: 2009년 1월 11일
오사수나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19  - 날짜: 2009년 1월 18일
F.C. 바르셀로나 v 데포르티보


라운드 20  - 날짜: 2009년 1월 25일
F.C. 바르셀로나 v 누만시아

라운드 21  - 날짜: 2009년 2월 1일
라싱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22  - 날짜: 2009년 2월 8일
F.C. 바르셀로나 v 스포르팅 히혼

라운드 23  - 날짜: 2009년 2월 15일
레알 베티스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24  - 날짜: 2009년 2월 22일
F.C. 바르셀로나 v 에스파뇰

라운드 25  - 날짜: 2009년 3월 1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26  - 날짜: 2009년 3월 8
F.C. 바르셀로나 v 아틀레틱 빌바오

라운드 27  - 날짜: 2009년 3월 15일
알메리아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28  - 날짜: 2009년 3월 22일
F.C. 바르셀로나 v 말라가

라운드 29  - 날짜: 2009년 4월 5일
레알 바야돌리드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30  - 날짜: 2009년 4월 12일
F.C. 바르셀로나 v 레크레아티보 우엘바

라운드 31  - 날짜: 2009년 4월 19일
헤타페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32  - 날짜: 2009년 4월 22일
F.C. 바르셀로나 v 세비야

라운드 33  - 날짜: 2009년 4월 26일
발렌시아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34  - 날짜: 2009년 5월 3일
레알 마드리드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35  - 날짜: 2009년 5월 10일
F.C. 바르셀로나 v 비야레알

라운드 36  - 날짜: 2009년 5월 17일
마요르카 v F.C. 바르셀로나

라운드 37  - 날짜: 2009년 5월 24일
F.C. 바르셀로나 v 오사수나

라운드 38  - 날짜: 2009년 5월 31일
데포르티보 v F.C.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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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08 4강

from 축구 2008/06/26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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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네 팀만이 살아 남았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터키 감독 파티흐 테림(Fatih Terim) / 독일 감독 요아힘 뢰브(Joachim Loew) / 러시아 감독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 스페인 감독 루이스 아라고네스(Luis Aragones).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미끌어진 게 이변이라면 이변일테고. 프랑스랑 이탈리아, 스웨덴 등은 전력 자체가 별로였다고 생각(감독이 별로였던 것도 있고).

뿌욜과 이니에스타, 챠비가 있는 스페인을 응원하지만, 역시 우승은 독일이 가져갈 듯.


사진 출처는 (게티라 좀 불안하긴 하지만)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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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잉글랜드 클럽끼리 맞붙은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맨유가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장장 10개월 여의 일정 속에서 맨유는 클럽 역사상 세번째로 챔스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되었다.

전반 26분 크리스티아노 호날두가 머리로 선제골을 넣을 때까지만 해도 작년 8월 5일 열렸던 커뮤니티 실드 때의 1-1 무승부(승부차기 끝에 3-0 맨유 승리. 판 데 사르에게 '반대사르'라는 별명이 붙여진 바로 그 경기)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라 보였다. 그러나 호날두의 골 이후 19분여가 흐른 전반 종료 직전에 프랭크 램파드가 동점골을 넣었다. 후반전에 들어서 디디에 드록바(하악하악)와 램파드가 골대를 맞출 때까지만 해도 첼시의 승리가 점쳐졌다.

후반 중반 무렵 BBC 해설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퍼거슨이 선수교체는 생각도 안 하고 있지만 금방 변화를 줄 수밖에 없을 거야. 맨유는 지금 너무 지쳐있거든." 실제로 그랬다. 난 라이브로는 후반 전부터 봤는데, 맨유가 모래 주머니를 달고 뛰는 줄 알았다. 첼시는 계속 공격했고. 후반 막판이었나, 드록신이 골 포스트를 때린 장면에서는 그대로 게임이 끝날 것 같다는 직감도 했으니까. 그러나 경기는 골이 증명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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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반 90분은 무승부로 끝났고, 연장전에서 커다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드록바가 스카이스포츠 이용자가 선정한 '맨 오브 더 매치(MOM)'에 뽑힌 네마냐 비디치의 볼따구를 찰싹하고 때렸기 때문이다. 심판은 이를 놓치지 않았고 첼시는 10명의 선수만이 그라운드에 남게 되었다. 연장까지 합쳐 120분의 시간이 흘렀고 결과는 여전히 1-1.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비에 젖은 모스크바는 침묵의 고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고요를 깬 건 맨유의 세 번째 키커 호날두의 실축. 페트르 체흐의 놀라운 선방이었다. 이어 마지막 키커로 나선 첼시의 주장 존 테리. 그의 위풍당당한 허우대가 갑자기 뒤뚱거리더니 그라운드에 미끄러지며 공을 차고 말았다. 공은 골 포스트를 맞고 튀어 나왔고 맨유는 환호성을 질렀다. 결국 6-5 상황에서 판 데 사르가 니콜라스 아넬카의 슛(체흐가 호날두를 막은 바로 그 코스)을 막아냈다. 판 데 사르는 괴성을 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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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로서는 1968년과 1999년에 이은 세 번째 우승이다. 그리고 또 하필이면 올해는 뮌헨 참사Munich air disaster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말콤 글레이저가 구단을 인수하고 처음 따낸 유럽선수권 타이틀 되겠다.

UEFA 팬이 선정한 MOM은 호날두. 그런데 공식 MOM은 누구지? 판 데 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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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한 자의 슬픔. 홀로 남아 그라운드를 응시하는 한 첼시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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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데 사르 曰
테리가 넘이지지만 않았다면 게임은 그대로 끝났겠지. 정말 운이 좋았달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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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긱스 曰
아마도 운명이 아닐까 해. (맨유 레전드 보비 찰튼의 출장 기록과 동률을 이룬 날에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며)


어쨌든 맨유 우승 축하. 그리고 박지성에겐 심심한 위로를. 퍼거슨은 전 국민을 상대로 낚시에 성공했다. 역시 명장은 명장. 이제 그만 은퇴하시지.

아래는 위키에서 가져온 루즈니키 스타디움 사진. 모스크바가 이렇게 아늑한 곳인 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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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www.uefa.com/competitions/ucl/fixturesresults/round=15109/match=301604/report=rp.html
http://en.wikinews.org/wiki/2008_UEFA_Champions_League_Final:_Manchester_United_vs._Chelsea_F.C.
http://en.wikipedia.org/wiki/2008_UEFA_Champions_League_F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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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efa.com

30분후 시작. 이기리라 믿는다. 메시야, 2골만 넣자.
Més que un club, barδ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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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efa.com


앙리가 감기(발열) 때문에 선발 출장하지 못한 것이 무승부의 원인이었달까. 인혜는 사이드에서 큰 활약이 없었다. 이게 좀 아쉽다. 메시와 데코가 돌아오긴 했지만, 둘 다 완전치 않은 모습(못했다는 건 아님). 에투도 경기감각이 좀 아쉽고. 뚜레와 잠보, 아비달은 매우 훌륭했다. 아, 챠비도. 무실점으로 막은 게 다행이다. 경기 초반 호날두의 실축은 천만다행.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이렇게 걸어 잠글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EPL 1위팀 맞는겨? 패스 미스 100개에다가 운도 없었음. 박지성은 나름 잘 했다고들 한다. 그러나 워낙 수비 위주여서 아쉬운 모습. 루니야, 컨디션이 별로던데 꼭 나왔어야 했니.

다음주는 OT 원정이다. 메시와 데코가 완벽 부활하고, 앙리마저 선발로 나온다면, 모스크바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멋진 한판 승부를 기대한다.

내 맘대로 뽑는 오늘의 MOM은, 야야 뚜레.


(졸려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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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이프, 마라도나, 히바우도, 호나우딩요 등등등.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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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토트넘 소식.



2008년 1월 22일, 런던 화이트 하트 레인(White Hart Lane)에서 열린 칼링컵(
Carling Cup) 준결승전 2차전 북런던 더비(North London derby)에서 토트넘은 숙적 아스날을 5-1로 대파했다. 1999년 11월 7일, 역시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벌어진 프리미어리그 북런던 더비에서 2-1로 승리한 이후, 9년만의 승리(경기수로는 22경기만의 승리. 9년 동안 21번을 내리 지거나 비겼다는 얘기다-_- 더 정확히는 12번의 패배와 9번의 무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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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이라니! 벤트너의 자책골까지 무려 다섯 골을 기록하는 역사적인 순간되겠다. 다시 말해 아스날의 안습날. 경기내용까지 아스날을 압도하는 초절정 기쁨! 이제 첼시-에버튼 승자와 웸블리에서 칼링컵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 이대로 우승까지 해서, 편안하게 유에파컵 진출권을 따냈으면 한다.

1999년 이후 아스날과의 역대 전적.
얼마나 오랜만에 이긴 건지 한눈에 들어온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한번 이겨야 할텐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는 여기)

후안데 라모스(Juande Ramos) 감독이 점점 맘에 든다. 북런던 더비에서 9년만의 승리를 이뤘는데, 그것도 5-1이라는 파격적인 스코어를 기록했는데, 어찌 맘에 안 들 수 있으랴.

저메인 제나스의 놀라운 첫골이 중요했다. 오늘 유난히 컨디션이 좋아 보인 저메인 제나스. 벤트너의 자책골을 어시스트(?)하는 명랑함까지 선보였다. 2-0으로 전반을 기분좋게 마치고, 후반이 시작되자 마자 마이 히어로, 로비 킨의 그림같은 논스톱 슛, 골(그의 토트넘에서의 101번째 골!). 스코어는 3-0으로 벌어지고, 아스날은 거의 아노미 상태에 빠진다. 여기에다가 역습 찬스에서 아론 레넌의 골로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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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스의 첫번째 골 장면.


후반 19분에는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와 로비 킨을 빼고 저메인 데포와 케빈-프린스 보아텡을 넣는 재기넘치는 선수 운용을 선보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아스날의 굴욕! (차포 떼고도 너네 이길 수 있거든!) 미친 아데바요르의 골로 클린싯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역습 위주의 후반부에도 히어로 저메인 제나스의 어시스트에 이은 스티드 말브랑크의 골로 승리를 확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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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킨의 골 장면.


종료 휘슬과 함께 선보인 로비 킨(Robbie Keane)의 덩실덩실 어깨춤을 평생 잊지 못하리라. (그는 2002년부터 토트넘에서 뛰었고, 나는 2002년부터 그를 좋아했다. 내가 토트넘을 좋아하게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로비 킨이다.)

새벽부터 일어난 보람이 있다. :D


+ 우리의 이영표 선수도 굿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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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문화사

from 책과 세계 2008/01/20 12:38

살림지식총서 90번째 책이다. 예전에 서평을 올렸던 <<서울의 탄생>>이란 책도 이 살림지식총서 중 하나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이라면 역시 짧고 간결한 내용을 들 수 있다. 얘기를 하다 만 것 같은 단점도 있으나, 입문용으로는 제격이랄까. (입문서 좀 그만 보자-_-)

개인적으로 축구를 매우 좋아하고 또 '나름대로 蹴球狂'이란 카테고리를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축구에 대해서 모르는 게 참 많다고 느껴지는 책이다. 일단 몰랐던 사실을 적어보자.

당시(19세기 무렵, 책에는 "18세기 무렵"으로 나온다. 이는 명백한 오기인듯.) 축구팀 중 몇몇은 아예 영국인에 의해서 설립된 것도 있었는데 AC 밀란이나 제노아가 그러한 경우였다. 이 두 팀의 연고지가 이탈리어어 표기로 밀라노(Milano)와 제노바(Genova)임에도 축구팀 이름은 영어식 표기인 밀란(Milan)과 제노아(Genoa)를 따르게 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탈리아 학생들에 의해서 설립된 유벤투스 역시 유니폼에서만큼은 영국의 노츠 카운티(Notts County)의 흑백 줄무늬 유니폼을 똑같이 본뜨는 등 초창기 이탈리아 축구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영국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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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의 분홍색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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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츠 카운티의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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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의 변신!

+ 이탈리아의 축구 클럽 유벤투스(Juventus)의 그 유명한 흑백 줄무늬 유니폼은 노츠 카운티에서 가져온 것이다. 유벤투스는 원래 물방울 무늬의 분홍색 유니폼(당시는 분홍색이 싸게 먹혔다)에 검은색 타이(!)를 사용했는데, 빨래를 하면 할수록 색이 바래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1903년 유벤투스는 유니폼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유벤투스는 팀 메니저였던 잉글랜드인 존 새비지에게 새 유니폼을 구해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고, 우연의 일치로 새비지의 노팅엄에 살던 친구가 노츠 카운티의 서포터였는데, 노츠 카운티의 흑백 줄무늬 유니폼을 토리노로 보내온 것이다(참고로 노츠 카운티의 연고지는 버밍엄이다). 그리하여 유벤투스가 지금까지 흑백 줄무늬 유니폼을 유지하고 있다. (출처는 Wikipedia: Notts County F.C.)

1970년대 들어 바야흐로 바이에른 뮌헨의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다. 사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바이에른 뮌헨은 지역 라이벌팀인 1860 뮌헨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분데스리가 출범 당시 한 연고지에 한 팀만 인정한다는 독일축구협회의 결정에 따라 바이에른은 1860 뮌헨에 밀려 분데스리가 원년 멤버에 끼지도 못했고, 2년 후에야 1부 리그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1860 뮌헨이 무관심 속에 방치한 세 명의 선수(뮬러, 베켄바워, 마이어)를 재빠르게 영입하면서 바이에른은 일대 혁명을 맞이하게 됐다. (26~7쪽)

스페인에 처음으로 축구가 유입된 것은 19세기 말 무렵으로 바스크 지방의 광산에 작업을 하러 온 영국인 광부들을 통해서였다. (…) 영국인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에 의해 설립된 아틀래틱 빌바오는 그 당시 영국 최고의 클럽이었던 선더랜드(Sunderland)를 늘 선망했고, 이 때문에 선더랜드의 유니폼을 본뜬 붉은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스페인 무대를 호령했었다.
1899년에는 스위스 국가대표였던 감퍼(Joan Gamper)에 의해 FC 바르셀로나가 창단되었으며, 여기에 자극을 받아 얼마 후에는 같은 도시에 에스파뇰(Espanyol)이 창단됐다. 팀 이름이 '스페인'을 뜻하는 에스파뇰은 외국인에 의한 축구팀 창단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스페인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클럽이었다. (36~7쪽)

국내 리그 출발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잉글랜드는 선구자였다. 1872년 글래스고에서 벌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경기는 세계 최초의 A매치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이후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에 지나치게 고무된 잉글랜드는 반세기 동안 자신들이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외국 팀들과 경기하길 꺼렸고 1950년까지는 월드컵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46쪽)
+ 1872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시합은 역사상 최초의 국가간 A매치로 공인되고 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이 맞붙은 것이다. 시합은 1872년 11월 30일, 스코틀랜드 파틱에 위치한 서스코틀랜드 크리켓 클럽의 경기장인 해밀튼 크레센트에서 벌어졌다. 시합은 0-0 무승부로 끝났고 약 4천명의 관중이 지켜보았다. (출처는 Wikipedia: Scotland v England (1872))

여기까지는 '제1부 유럽의 명 리그'의 내용이고, 세리에 A, 분데스리가, 프리메라리가, 프리미어리그가 차례대로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2부의 제목은 '라이벌 열전'이다. 레인저스와 셀틱, AC 밀란과 인터 밀란, 아스날과 토트넘, 올림피끄 마르세유와 파리 생제르망이 소개된다. 특이한 점은 분데스리가와 프리메라리가의 라이벌은 언급하지 않는 대신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르 샹피오나의 라이벌이 소개되고 있는 점이다. '라이벌'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바이에른 뮌헨과 1860 뮌헨,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관계가 1부에 대충 서술되어 있다는 점을 의식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2부에서 소개된 내용 중 몰랐던 점을 적어보자.

레인저스와 셀틱 중 먼저 창설된 쪽은 레인저스였다.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근대적 축구의 시작과 함께'라고 말해도 좋을 1872년에 설립된 레인저스(Rangers)는 유럽에서도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클럽 중의 하나였다. (…) 당시 잉글랜드에서 처음 시작된 축구는 그때까지만 해도 드리블 위주의 경기였지만 글래스고에서는 진흙탕이나 다름없는 경기장의 조건 때문에 이러한 축구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자연스레 레인저스의 선수들은 드리블이 아닌 패스 위주의 경기를 해야 했고, … 레인저스는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축구 클럽이자 근대 축구에 패스를 도입한 선각자로서의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셀틱(Celtic)은 같은 도시 동부에 모여 살던 아일랜드계 노동자들이 만든 축구 클럽이었다. 당시 글래스고에는 조선업이 한창이었던 관계로 아일랜드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건너왔는데 이들은 스코틀랜드인들과 상이한 문화와 종교로 인해 많은 갈등을 겪어왔던 터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들은 축구팀에 켈트족의 후예임을 표방하는 셀틱이라는 이름을 쓰고, 아일랜드 국기를 상징하는 녹색와 흰색의 유니폼을 채택했다. 이렇게 해서 셀틱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클럽이 됐다. 1887년 결성된 셀틱은 그 이듬해인 1888년 5월 28일 창설 후 첫 경기를 치르게 되었는데, 상대는 바로 같은 도시 서부에 위치한 레인저스였다. 동부의 셀틱과 서부의 레인저스가 격돌한 이 경기에서 셀틱은 5-2로 승리하면서 세계 최장의 라이벌전이 시작된다. (59~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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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인저스와 셀틱의 더비전을 일컬어 올드 펌(Old Firm)이라고 한다. RangersFansVCelticFans.com이란 사이트가 있는데 여기 들어가보면 글래스고 레인저스와 글래스고 셀틱의 역사와 기본 정보들이 아기자기하게 비교되어 있다.

여기까지다. 모르는 것 투성이다. 특히 초창기의 축구 역사나 빅 리그 이외의 사실들은 여전히 문외한이라는 데서 뼈아픈 반성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 역시 유럽 축구 위주의 서술이라는 한계를 '당연하게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축구의 문화사"인데, 더 정확하게는 "유럽 축구의 문화사"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유럽 축구, 그 중에서도 빅 리그, 또 그 중에서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엄청난 자본력으로 세계 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건 사실이고, 우리나라의 축구 문화도 그런 사실에 별로 예외적이진 않다. 맨유는 놀라운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아스날이나 리버풀, 첼시 등의 팬은 많이 있어도 예를 들어 아스톤 빌라나 웨스트햄, 에버튼 등의 팬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잉글랜드 이외의 예를 들어봐도 FC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AC 밀란, 인테르나치오날레 등의 팬은 간간히 있으나 그 이외의 클럽의 팬은 좀처럼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예외적으로 알고 있는 사례 중 하나는 발렌시아의 팬이 운영하는 블로그다.) 이런 사실을 팬들의 과문 탓으로 돌리는 건 잘못이다. 뭘 보고 경험해야 팬이 될 것 아닌가. 그런데 기껏 우리가 보아온 축구라곤 K리그와 우리나라 국대 경기 이외에 도대체 뭐가 있는가? 스포츠 뉴스 말미에 짧게 소개되곤 했던 해외 축구의 인상적인 모습만으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나마 최근 몇 년 사이에 박지성, 이영표 등의 활약상을 생중계로 지켜볼 수 있게 됐고, 또 프리메라리가와 세리에 A, 그리고 에레디비지에의 유명한 팀들의 경기를 볼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여전히 FC 포르투의 경기나 올드 펌, 베르더 브레멘이나 샬케 04, 페네르바체, 올림피아코스 등의 경기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세계 축구계의 양대 축이라는 남미 축구는 또 어떤가. 또 슈퍼스타 베컴이 진출해 있는 MLS는 어떤가.


덧- 문화의 집중, 편중 현상은 비유하자면 사람이 편식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나도 토트넘과 FC 바르셀로나의 팬이지만, 좀더 외연을 넓혀야겠다는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