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유쾌한 영화. 청소년 임신과 낙태, 출산, 입양이라는, 따지고 보면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걸 풀어내는 방식마저 심각하다면 도대체 누가 그런 영화를 돈 주고 볼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이르게 되면 이 영화가 대체로 수긍이 간다. 그리고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유쾌함'을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의 마케팅 방식은 대체로 성공한 편이고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6위1를 기록한 결과(필름2.0의 보도에서는 9위로 나온다. 둘의 차이는 뭐지?)는 대체로 만족스럽다(물론 난 관계자는 아니다).
이런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약간은 별로인 주노의 남자친구 블리커가 알 수 없는 개폼을 잡고 있다.
조금은 별로인 블리커의 숨겨진 매력(?)은 영화 후반부에 가서야 104% 발휘된다.
미네소타에 사는 16살 고등학생 주노 맥거프Juno MacGuff(앨렌 페이지Ellen Page)는 슬래셔 무비와 하드코어 락을 좋아하는, 약간은 특별한 캐릭터다. 주노는 친한 남자친구일뿐인, 약간은 별로인 블리커Bleeker(마이클 세라Michael Cera)를 꼬드겨, 전적으로 자신이 원한다는 이유로 볼품없는 의자 위에서 거사(?)를 치른다. 결과는 임신. 주노의 부모님(아버지는 냉난방설비 시공업자에다가 실없는 농담을 즐겨하고 어머니는 개를 완소하지만 주노의 개 알레르기 때문에 애완견은 자제하고 있는, 약간은 이상한 부모님 되겠다. 게다가 두 사람은 재혼한 상태)은 이 소식에 담담할 따름임은 물론 후원자를 자청하고 나선다.
주노와 로링 부부가 첫 대면하는 장면, 마크는 주노의 이름이 알래스카의 도시 이름을 뜻하는 거냐고 묻는다.
정답은 "NO". 알래스카의 주도인 주노(Juneau)라는 도시를 알고 있던 나도 사실은 마크와 같은 의문을 가졌었다. 그리고 사실은 주노가 알래스카의 그 주노이기를 살짝 바랐었다. (마크는 조금은 훈남!)
주노는 아기 입양을 원한다는 신문 광고를 단짝 친구 레아Leah(올리비아 썰비Olivia Thirlby)와 함께 뒤적이다가 자신의 아기가 행복하게 자랄만한 적절한 대상자를 찾아내고 아버지와 함께 그 집을 찾아간다. 불임의 고통을 겪다 입양을 선택한 마크와 바네사 로링Mark and Vanessa Loring(제이슨 베이트먼과 제니퍼 가너Jason Bateman and Jennifer Garner) 부부는 약간은 안온한 생활을 누리는 중산층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주노는 로링 부부에게 자신의 아이를 맡기기로 104% 확신하지만,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 이들 부부에게도 균열이 있을 줄이야! 게다가 주노는 자신의 취향과 잘 맞는 유부남 마크와 친해지고, 또 한편으로는 아기를 갈망하는 바네사를 목격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거나 주노의 배는 점점 불러오고…
어쨌거나 주노의 배는 점점 불러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노는 (누가 쳐다보거나 말거나) 학교를 계속 다니고 (태아에 영향이 있거나 말거나), 마크가 강추하는 슬래셔 무비2를 감상한다. (다행히도 술담배는 안 한다.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막장은 아니다.) 배가 불러오면 출산은 인지상정, 로링 부부의 이혼 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노는 아기를 낳는다. 아기를 낳기 전 주노는 약간은 별로인 블리커를 조금은 더 좋아하기로 결심하는데, 주노가 아기를 낳을 때 블리커는 위의 저 운동복 복장으로 병원까지 질주하여 출산 후의 주노를 꼭 껴안아준다. 결국 아기는 마크의 부재로 싱글맘이 되어버린 바네사의 품에 안기게 되고, 주노는 평온한 여름날 블리커와 함께 간간들어지는 러브 송, "Anyone Else but You"를 불러제끼며 영화의 끝을 맺는다. 바로 이 노래.
영화 <주노>는 심각한 주제를 다룬 영화이지만, 결코 심각하지 않게 오히려 홀가분하고 유쾌하게 보인다. 주노는 임신 테스트할 때와 낙태를 고민할 때 그리고 부모님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을 때만 약간은 심각해질뿐(이 세 가지 경우에도 유쾌함을 포기하는 건 아니다) 전체적으로 임신 따위야 뭐가 그렇게 큰 일이냐는 듯한 언사와 행동으로 일관한다. 청소년기의 임신과 낙태는 어떻게 보면 정말 큰 일이겠지만, 주노는 그것을 잠깐의 일탈로 자신의 운명을 정한다. 그리고 블리커를 꼬드겨 거사를 치룰 무렵의 마음과 몸으로 귀환하기 위해 시간을 지체할 뿐이다. 그들은 물론 다시 거사를 행하겠지만, 그때에는 콘돔이 함께 할 것이고, 더 이상의 우울한 나날은 제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돋보이는 것은 오로지 주노와 블리커의 관계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블리커는 주노의 고민과 행복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부가적인 캐릭터인지 모른다. 주노는 블리커보다는 로링 부부와 더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가고, 특히 마크와의 관계는 그것이 연인인지 아니면 그냥 친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가까워보인다(주노와 마크는 끌어안고 춤까지 춘다!). 처음에는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로링 부부의 모습도 (전적으로 주노의 개입에 의해서는 아니지만) 결국에는 피할 수 없는 위기를 맞는다. 달리 생각해보면, 주노도 그렇게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건 아니었다. 어쩌면 누구나 조금은 불행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주노를 안심시킨 건지도 모르겠다.
난 청춘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특히나 그것이 20대의 경우가 아닌 10대의 경우인 경우에는 더 그렇다. 또 그것이 지나치게 흥미만을 추구하거나, 너무나 딱 부러지듯 사회적인 시선을 거두어버린다면 더더욱 그렇다. <주노> 역시 그렇고 그런 청춘영화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의 미덕은 심각한듯 심각하지만은 않고, 유쾌한듯 유쾌하지만은 않은 데에 있다. 그런게 '쿨'한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주노의 사계절은 흘러갔고, 다시 평범한 여고생으로 돌아가 블리커와 함께 듀엣 송을 부른다. 가을의 어두컴컴한 분위기에서 시작한 <주노>는 녹음진 여름의 풍경으로 끝을 맺는 것이다. 10대의 고민을 10대의 시선에서 해결하는, 다시 말해 10대의 문제를 어른들이 '계도'하지 않는 영화. 오히려 속물같은 어른들의 모습들이 진부하게만 느껴지는, 다시 말해 '청춘 만세!'를 설파하는 영화. 물론 어쩔 수 없는 문화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국의 관객보다는 미국의 관객이 훨씬 더 열광적인 반응을 보내겠지만, 나도 이 영화가 맘에 들었다. 약간의 관음증과 이해할 수 없는 소동에다가 아무런 특징도 없는 캐릭터들이 아무런 특징도 없는 에피소드 속에서 아무런 특징도 없는 결론으로 끝나버리는 한국 영화 <제니, 주노> 보다야 훨씬 더 좋지 아니한가?
덧- 마크가 강추하는 노래, 소닉 유스의 "Superstar". 주노는 맘에 들어하진 않았지만, 나는 무척 맘에 들었다.
덧2- <주노>의 사운드트랙은 훌륭하다. 국내에도 발매됐지만, DVD 출시 때 OST도 끼워줬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당장 구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폭스 서치라이트의 주노 홈페이지에 가면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덧3- 사운드트랙만큼이나 인상적인 오프닝 씬은 여기에 들어가면 볼 수 있다. 이게 모두 수작업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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