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지식총서 90번째 책이다. 예전에 서평을 올렸던
<<서울의 탄생>>이란 책도 이 살림지식총서 중 하나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이라면 역시 짧고 간결한 내용을 들 수 있다. 얘기를 하다 만 것 같은 단점도 있으나, 입문용으로는 제격이랄까. (입문서 좀 그만 보자-_-)
개인적으로 축구를 매우 좋아하고 또 '나름대로 蹴球狂'이란 카테고리를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축구에 대해서 모르는 게 참 많다고 느껴지는 책이다. 일단 몰랐던 사실을 적어보자.
당시(19세기 무렵, 책에는 "18세기 무렵"으로 나온다. 이는 명백한 오기인듯.) 축구팀 중 몇몇은 아예 영국인에 의해서 설립된 것도 있었는데 AC 밀란이나 제노아가 그러한 경우였다. 이 두 팀의 연고지가 이탈리어어 표기로 밀라노(Milano)와 제노바(Genova)임에도 축구팀 이름은 영어식 표기인 밀란(Milan)과 제노아(Genoa)를 따르게 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탈리아 학생들에 의해서 설립된 유벤투스 역시 유니폼에서만큼은 영국의 노츠 카운티(
Notts County)의 흑백 줄무늬 유니폼을 똑같이 본뜨는 등 초창기 이탈리아 축구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영국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6쪽)
 유벤투스의 분홍색 유니폼 |  노츠 카운티의 유니폼 |  유벤투스의 변신! |
+ 이탈리아의 축구 클럽 유벤투스(
Juventus)의 그 유명한 흑백 줄무늬 유니폼은 노츠 카운티에서 가져온 것이다. 유벤투스는 원래 물방울 무늬의 분홍색 유니폼(당시는 분홍색이 싸게 먹혔다)에 검은색 타이(!)를 사용했는데, 빨래를 하면 할수록 색이 바래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1903년 유벤투스는 유니폼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유벤투스는 팀 메니저였던 잉글랜드인 존 새비지에게 새 유니폼을 구해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고, 우연의 일치로 새비지의 노팅엄에 살던 친구가 노츠 카운티의 서포터였는데, 노츠 카운티의 흑백 줄무늬 유니폼을 토리노로 보내온 것이다(참고로 노츠 카운티의 연고지는 버밍엄이다). 그리하여 유벤투스가 지금까지 흑백 줄무늬 유니폼을 유지하고 있다. (출처는
Wikipedia: Notts County F.C.)1970년대 들어 바야흐로 바이에른 뮌헨의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다. 사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바이에른 뮌헨은 지역 라이벌팀인 1860 뮌헨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분데스리가 출범 당시 한 연고지에 한 팀만 인정한다는 독일축구협회의 결정에 따라 바이에른은 1860 뮌헨에 밀려 분데스리가 원년 멤버에 끼지도 못했고, 2년 후에야 1부 리그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1860 뮌헨이 무관심 속에 방치한 세 명의 선수(뮬러, 베켄바워, 마이어)를 재빠르게 영입하면서 바이에른은 일대 혁명을 맞이하게 됐다. (26~7쪽)
스페인에 처음으로 축구가 유입된 것은 19세기 말 무렵으로 바스크 지방의 광산에 작업을 하러 온 영국인 광부들을 통해서였다. (…) 영국인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에 의해 설립된 아틀래틱 빌바오는 그 당시 영국 최고의 클럽이었던 선더랜드(
Sunderland)를 늘 선망했고, 이 때문에 선더랜드의 유니폼을 본뜬 붉은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스페인 무대를 호령했었다.
1899년에는 스위스 국가대표였던 감퍼(
Joan Gamper)에 의해 FC 바르셀로나가 창단되었으며, 여기에 자극을 받아 얼마 후에는 같은 도시에 에스파뇰(
Espanyol)이 창단됐다. 팀 이름이 '스페인'을 뜻하는 에스파뇰은 외국인에 의한 축구팀 창단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스페인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클럽이었다. (36~7쪽)
국내 리그 출발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잉글랜드는 선구자였다. 1872년 글래스고에서 벌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경기는 세계 최초의 A매치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이후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에 지나치게 고무된 잉글랜드는 반세기 동안 자신들이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외국 팀들과 경기하길 꺼렸고 1950년까지는 월드컵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46쪽)
+ 1872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시합은 역사상 최초의 국가간 A매치로 공인되고 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이 맞붙은 것이다. 시합은 1872년 11월 30일, 스코틀랜드 파틱에 위치한 서스코틀랜드 크리켓 클럽의 경기장인 해밀튼 크레센트에서 벌어졌다. 시합은 0-0 무승부로 끝났고 약 4천명의 관중이 지켜보았다. (출처는
Wikipedia: Scotland v England (1872))
여기까지는 '제1부 유럽의 명 리그'의 내용이고, 세리에 A, 분데스리가, 프리메라리가, 프리미어리그가 차례대로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2부의 제목은 '라이벌 열전'이다. 레인저스와 셀틱, AC 밀란과 인터 밀란, 아스날과 토트넘, 올림피끄 마르세유와 파리 생제르망이 소개된다. 특이한 점은 분데스리가와 프리메라리가의 라이벌은 언급하지 않는 대신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르 샹피오나의 라이벌이 소개되고 있는 점이다. '라이벌'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바이에른 뮌헨과 1860 뮌헨,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관계가 1부에 대충 서술되어 있다는 점을 의식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2부에서 소개된 내용 중 몰랐던 점을 적어보자.
레인저스와 셀틱 중 먼저 창설된 쪽은 레인저스였다.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근대적 축구의 시작과 함께'라고 말해도 좋을 1872년에 설립된
레인저스(Rangers)는 유럽에서도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클럽 중의 하나였다. (…) 당시 잉글랜드에서 처음 시작된 축구는 그때까지만 해도 드리블 위주의 경기였지만 글래스고에서는 진흙탕이나 다름없는 경기장의 조건 때문에 이러한 축구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자연스레 레인저스의 선수들은 드리블이 아닌 패스 위주의 경기를 해야 했고, … 레인저스는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축구 클럽이자 근대 축구에 패스를 도입한 선각자로서의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셀틱(Celtic)은 같은 도시 동부에 모여 살던 아일랜드계 노동자들이 만든 축구 클럽이었다. 당시 글래스고에는 조선업이 한창이었던 관계로 아일랜드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건너왔는데 이들은 스코틀랜드인들과 상이한 문화와 종교로 인해 많은 갈등을 겪어왔던 터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들은 축구팀에 켈트족의 후예임을 표방하는 셀틱이라는 이름을 쓰고, 아일랜드 국기를 상징하는 녹색와 흰색의 유니폼을 채택했다. 이렇게 해서 셀틱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클럽이 됐다. 1887년 결성된 셀틱은 그 이듬해인 1888년 5월 28일 창설 후 첫 경기를 치르게 되었는데, 상대는 바로 같은 도시 서부에 위치한 레인저스였다. 동부의 셀틱과 서부의 레인저스가 격돌한 이 경기에서 셀틱은 5-2로 승리하면서 세계 최장의 라이벌전이 시작된다. (59~61쪽)
+ 레인저스와 셀틱의 더비전을 일컬어 올드 펌(
Old Firm)이라고 한다. RangersFansVCelticFans.com이란 사이트가 있는데
여기 들어가보면 글래스고 레인저스와 글래스고 셀틱의 역사와 기본 정보들이 아기자기하게 비교되어 있다.
여기까지다. 모르는 것 투성이다. 특히 초창기의 축구 역사나 빅 리그 이외의 사실들은 여전히 문외한이라는 데서 뼈아픈 반성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 역시 유럽 축구 위주의 서술이라는 한계를 '당연하게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축구의 문화사"인데, 더 정확하게는 "유럽 축구의 문화사"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유럽 축구, 그 중에서도 빅 리그, 또 그 중에서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엄청난 자본력으로 세계 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건 사실이고, 우리나라의 축구 문화도 그런 사실에 별로 예외적이진 않다. 맨유는 놀라운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아스날이나 리버풀, 첼시 등의 팬은 많이 있어도 예를 들어 아스톤 빌라나 웨스트햄, 에버튼 등의 팬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잉글랜드 이외의 예를 들어봐도 FC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AC 밀란, 인테르나치오날레 등의 팬은 간간히 있으나 그 이외의 클럽의 팬은 좀처럼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예외적으로 알고 있는 사례 중 하나는
발렌시아의 팬이 운영하는 블로그다.) 이런 사실을 팬들의 과문 탓으로 돌리는 건 잘못이다. 뭘 보고 경험해야 팬이 될 것 아닌가. 그런데 기껏 우리가 보아온 축구라곤 K리그와 우리나라 국대 경기 이외에 도대체 뭐가 있는가? 스포츠 뉴스 말미에 짧게 소개되곤 했던 해외 축구의 인상적인 모습만으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나마 최근 몇 년 사이에 박지성, 이영표 등의 활약상을 생중계로 지켜볼 수 있게 됐고, 또 프리메라리가와 세리에 A, 그리고 에레디비지에의 유명한 팀들의 경기를 볼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여전히 FC 포르투의 경기나 올드 펌, 베르더 브레멘이나 샬케 04, 페네르바체, 올림피아코스 등의 경기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세계 축구계의 양대 축이라는 남미 축구는 또 어떤가. 또 슈퍼스타 베컴이 진출해 있는 MLS는 어떤가.
덧- 문화의 집중, 편중 현상은 비유하자면 사람이 편식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나도 토트넘과 FC 바르셀로나의 팬이지만, 좀더 외연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이다. 일단은 셀틱이 맘에 든다.
덧2- 이 책은 오타의 밭이다. 연도의 오류도 간간히 보이고, 아무튼 읽는 데 좀 짜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