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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from 잡동사니 2008/01/31 11:57

1. 저번주 일요일, 그러니까 1월 27일,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2. 꼬맹이 때 했던 첫번째 이사, 국민학교 5학년 때 했던 두번째 이사, 2006년 9월에 했던 세번째 이사, 그리고 이번이 네번째 이사.

3. 이사는 참으로 귀찮은 것이다. 그냥 한 곳에서 평생 살면 얼마나 좋을까. 몇년 안에 또 이사를 한다는데, 제발 그냥 여기 계속 살았으면 좋겠다.

4. 우리집은 영원히 부평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부천이나 김포로 갈 수도 있었으나, 역시 또 이 망할 동네에 정착하게 됐다. 아무런 특징도 없고, 문화도 자연도 인정도 향수도 없는 이 곳.

5. 3일 정도 인터넷을 못했는데, 이건 뭐 마치 원시인이 된 듯한 기분-_- 다행히 어제 복구가 됐고, 이젠 무선공유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놀라운 속도가 나온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100메가 광랜인가?

6. 이사, 하면 딱히 떠오르는 그 무언가가 전혀 없어서 놀랐다. 딱 하나 떠올랐는데, 그건 바로 윤상의 노래, "이사". (노래는 조만간에 삭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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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이사

John Bull's Other Island

from 메모 2008/01/26 15:12
When I went to those great cities I saw wonders I had never seen in Ireland. But when I came back to Ireland I found all the wonders there waiting for me.
- George Bernard Shaw, <John Bull's Other Island>

Barbara & Rene Stoeltis, <Living in Ireland>(TASCHEN)를 보다가 메모.
바로 이렇게 생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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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특보의 탄생

from 메모 2008/01/26 13:40
국내에서 역대 최악의 황사는 2002년 3월 21일에 나타났으며, 당시 최고 미세먼지 농도는 2778μg/㎥에 이르렀다. 황사 발생 시간은 104시간으로 대단히 길었고, 휴교령이 내려지기까지 했다.
- 한겨레21 607호, 11쪽

그때의 104시간을 재구성해보면, 정말 흥미로울 것 같다. '황사특보의 탄생' 뭐 이런 제목의 시나리오가 하나 나올지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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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이유

from 메모 2008/01/26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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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때때로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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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체 게바라

근대문학의 종언?

from 책과 세계 2008/01/25 12:22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의 종언'이 한국에서도 감지된다면서 "1990년대에 만났던 한국의 문예비평가 모두가 문학에서 손을 떼었다"고 썼지만, 최원식의 말대로 "내가 알기론 김종철을 제외하고 문학을 떠난 비평가는 없다."(<한겨레> 10월 27일치 19면). 하지만 그걸 책잡아 '종언'이 주는 문제의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오만이다. 근 15년 동안 한국 문학이나 문학평론가들은 <녹색평론>을 능가하는 어떤 사회적 의제도 만들지 못했다. 유일하게 문학계를 떠난 그만이 그럴 수 있었다는 사실은 결국 무엇을 반증하는 것일까?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49154.html

장정일도 그렇지만, 가라타니 고진, 최원식, 김종철, <녹색평론>, 이 모두는 대중에게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나 역시 <문학동네> 2004년 겨울호였나, 갓 번역돼 나온 가리타니 고진의 짧은 평문을 읽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 근대문학의 종언? 뭔 얘기를 하는겨?

그러나 우리에게 '근대문학'이란 게 있었던가? 근대문학, 곧 소설이란 장르가 근대적 국민국가의 조건을 의미한다면 처음부터 틀렸다. 잘 알다시피 우리는 계몽의 시기를 거치지 않고 근대화되지 않았던가. 우리에게 근대화란 곧 일본에 의한 식민 통치, 5년간의 핵분열, 동족상잔, 기나긴 독재일뿐이다. 그런데 문학이 도대체 무슨 역할을 했단 말인가? 오히려 피와 땀의 이중주, 정신의 황폐와 육체의 상실이 근대화의 전부였을 것이다.

가령 "예컨대 일제 시대의 젊은이로 하여금 계몽과 해방의 주먹을 부르쥐게 했던 것은 이광수의 <무정>이고, 심훈의 <상록수>였다."라는 주장은 너무 과하지 않은가? 일제 시대에 이광수와 심훈을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변혁의 시기에 읽혔다는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나 조세희의 <난쏘공> 같은 작품, 혹은 '창비' 같은 동인지가 과연 새 시대를 열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문학의 역할을 과장하는 것은 비평가들이다. 그런데 문학의 위기를 과장하는 것도 비평가들이다. 비평가들이 설레발 친다고 문학이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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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th Ledger 1979-2008

"2008년 1월 22일 사망한 히스 레저의 생전 사진들이다(a photo montage of Heath Ledger who was found dead on 1/22/2008). … 그는 정말로 훌륭하고 뛰어난 배우였다(He was truly an up and coming actor). 영화 <다크 나이트>에 나올 그의 모습을 나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던가(I was really looking forward to seeing him in Dark Knight). 어쨌든 <다크 나이트>를 보게는 되겠지만, 그는 더이상 우리 곁에 있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And though I will still see it, it just won't be the same knowing Heath Ledgers no longer with us). … 히스 레저, 아직 당신의 시대는 오지도 않았단 말이야(You never know when it's your time)..." (출처는 여기)

2008년 1월 22일, 토트넘 팬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고, 히스 레저는 쓸쓸히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기뻐해야 하는가, 슬퍼해야 하는가...

안녕,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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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Legend - Ordinary People

가사 보기

존 레전드가 2005년에 발표한 "Ordinary People"은 그래미 수상곡이다. 이 노래에 사용된 유일한 악기는 피아노이고, 존 레전드 자신이 직접 연주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실수를 저지르는지, 또 그로 인한 다툼이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아주 평범한 장애물일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 노래의 뮤직 비디오에서 존 레전드는 순백의 배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피아노 바로 앞에서 연인과 가족이 언쟁을 벌이는 모습을 배우들이 연기한다. 뮤직 비디오 후반부에는 존 레전드 뒤로 오케스트라가 나타나며 존 레전드와 오케스트라 그리고 하모니카의 협연이 마지막 1분을 장식한다. 이 노래가 멋진 이유는 이와 같은 살아있는 감정과 단순함 때문이다.

(출처: Wikipedia_Ordinary People(song))

존 레전드의 출세곡이자 그의 가장 유명한 곡. 그의 첫번째 앨범 <Get Lifted>에 수록되어 있다.
이 노래는 한마디로, 'take it slow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테이킷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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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보너스. 존 레전드와 그의 영원한 우상 스티비 원더가 함께 한 라이브 클립.

John Legend & Stevie Wonder - Ordinary People
(12TH ANNUAL HOUSE OF TOYS BENEFIT NOKIA THEATER 12/15/07 LOS ANGE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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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토트넘 소식.



2008년 1월 22일, 런던 화이트 하트 레인(White Hart Lane)에서 열린 칼링컵(
Carling Cup) 준결승전 2차전 북런던 더비(North London derby)에서 토트넘은 숙적 아스날을 5-1로 대파했다. 1999년 11월 7일, 역시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벌어진 프리미어리그 북런던 더비에서 2-1로 승리한 이후, 9년만의 승리(경기수로는 22경기만의 승리. 9년 동안 21번을 내리 지거나 비겼다는 얘기다-_- 더 정확히는 12번의 패배와 9번의 무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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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이라니! 벤트너의 자책골까지 무려 다섯 골을 기록하는 역사적인 순간되겠다. 다시 말해 아스날의 안습날. 경기내용까지 아스날을 압도하는 초절정 기쁨! 이제 첼시-에버튼 승자와 웸블리에서 칼링컵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 이대로 우승까지 해서, 편안하게 유에파컵 진출권을 따냈으면 한다.

1999년 이후 아스날과의 역대 전적.
얼마나 오랜만에 이긴 건지 한눈에 들어온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한번 이겨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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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여기)

후안데 라모스(Juande Ramos) 감독이 점점 맘에 든다. 북런던 더비에서 9년만의 승리를 이뤘는데, 그것도 5-1이라는 파격적인 스코어를 기록했는데, 어찌 맘에 안 들 수 있으랴.

저메인 제나스의 놀라운 첫골이 중요했다. 오늘 유난히 컨디션이 좋아 보인 저메인 제나스. 벤트너의 자책골을 어시스트(?)하는 명랑함까지 선보였다. 2-0으로 전반을 기분좋게 마치고, 후반이 시작되자 마자 마이 히어로, 로비 킨의 그림같은 논스톱 슛, 골(그의 토트넘에서의 101번째 골!). 스코어는 3-0으로 벌어지고, 아스날은 거의 아노미 상태에 빠진다. 여기에다가 역습 찬스에서 아론 레넌의 골로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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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스의 첫번째 골 장면.


후반 19분에는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와 로비 킨을 빼고 저메인 데포와 케빈-프린스 보아텡을 넣는 재기넘치는 선수 운용을 선보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아스날의 굴욕! (차포 떼고도 너네 이길 수 있거든!) 미친 아데바요르의 골로 클린싯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역습 위주의 후반부에도 히어로 저메인 제나스의 어시스트에 이은 스티드 말브랑크의 골로 승리를 확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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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킨의 골 장면.


종료 휘슬과 함께 선보인 로비 킨(Robbie Keane)의 덩실덩실 어깨춤을 평생 잊지 못하리라. (그는 2002년부터 토트넘에서 뛰었고, 나는 2002년부터 그를 좋아했다. 내가 토트넘을 좋아하게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로비 킨이다.)

새벽부터 일어난 보람이 있다. :D


+ 우리의 이영표 선수도 굿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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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from 정치 2008/01/22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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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애처로운 눈빛, 저 갸름한 턱선...


벼락같이 등장한 버락 오바마.
버럭, 미국을 일깨우며 홀연히 등장한 버럭 오바마. (응?)

덴젤 워싱턴을 연상케하는 놀라울 정도로 준수한 외모.
그는 정치인인가, 영화배우인가?
그런데 그의 아내까지 비욘세를 닮았다고 하면...
나는 진정 '오바마빠=오바마니아Obamania'가 되는 건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단다. 이 사실 하나로도 그를 지지할 수 있다.
다음 두 단락은 위키쿼트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연설문 중 일부를 우리말로 옮긴 것.
출처는 http://en.wikiquote.org/wiki/Barack_Obama

나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멍청하고 터무니없는 전쟁입니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성급하고 경솔한 전쟁입니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리처드 펄(네오콘. 전 국방부 국방정책위원장으로서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쓰레기)과 폴 월포위츠(역시 쓰레기) 그리고 부시 행정부의 다른 탁상공론자들, 형편없는 전사들의 옳지 못한 시도입니다. 이들의 호전적 이데올로기는 우리를 수렁에 빠트리게 할 것이고, 그로 인한 인명의 상실, 극심한 고초 등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칼 로브(킹왕짱 쓰레기) 같은 정치꾼들의 시도입니다. 이들의 시도는 (건강)보험 미가입률과 빈곤율의 증가, 가계 수입의 하락에 대해 무방비 상태이고, 기업 스캔들과 대공황 이후 최악의 달을 맞이한 주식 시장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지우려 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내가 반대하는 것입니다. 더럽고 경솔한 전쟁,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근거한 전쟁, 원칙이 아니라 정치에 근거한 전쟁 말입니다.

- 시카고에서 진행된 이라크 전쟁 반대 집회에서 한 연설 중(2002년 10월 26일)

불과 일년 전만 해도 내가 이 자리에 있게 될 줄은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얼마나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고 있는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너무나도 필요로 하고 있는 변화와 진보의 길에 최선책을 제시할 수 있을지 궁리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지난 6년간 진행된 조지 부시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또 그들이 무시하고자 했던 각종 문제들, 이런 것들이 미국을 불안정한 곳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조지 부시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상식적인 해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치는 더욱 악랄해졌고 분열되었으며, 더욱 더 돈과 (부정적인) 영향에 휘둘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미국의 커다란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 대통령 후보 입후보 연설 중(2007년 1월 16일)

아주 좋다. 단지 흑인이어서? 그건 아니다.
그에게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문제'가 무엇인지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다.
신의 가호를 받는 미국이 이토록 심각한 위기에 놓여있다는 걸 인정하고도,
그러고도 상원의원 자리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대통령 후보로까지 나서고, 또 잘하면 집권할 수도 있다는 게 사실인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후세인(Hussein)'이란 미들 네임을 고수하고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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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실입니다.


영어에 능숙한 사람들은 그가 대중 연설의 귀재라고 하는데,
이건 내 영역 밖이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정치인에게 열광하는 게 조금은 위험하다는 것, 또 어느 정도껏 해야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그런데... 끌리는 걸 어쩌랴?


덧- 11월 초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있냐'는 질문에
"버락 오바마를 지지합니다."라고 답했던 진중권이 생각난다. (여기를 클릭)


- 심지어는 미녀도 오바마를 지지한다! d(-_-)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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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문화사

from 책과 세계 2008/01/20 12:38

살림지식총서 90번째 책이다. 예전에 서평을 올렸던 <<서울의 탄생>>이란 책도 이 살림지식총서 중 하나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이라면 역시 짧고 간결한 내용을 들 수 있다. 얘기를 하다 만 것 같은 단점도 있으나, 입문용으로는 제격이랄까. (입문서 좀 그만 보자-_-)

개인적으로 축구를 매우 좋아하고 또 '나름대로 蹴球狂'이란 카테고리를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축구에 대해서 모르는 게 참 많다고 느껴지는 책이다. 일단 몰랐던 사실을 적어보자.

당시(19세기 무렵, 책에는 "18세기 무렵"으로 나온다. 이는 명백한 오기인듯.) 축구팀 중 몇몇은 아예 영국인에 의해서 설립된 것도 있었는데 AC 밀란이나 제노아가 그러한 경우였다. 이 두 팀의 연고지가 이탈리어어 표기로 밀라노(Milano)와 제노바(Genova)임에도 축구팀 이름은 영어식 표기인 밀란(Milan)과 제노아(Genoa)를 따르게 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탈리아 학생들에 의해서 설립된 유벤투스 역시 유니폼에서만큼은 영국의 노츠 카운티(Notts County)의 흑백 줄무늬 유니폼을 똑같이 본뜨는 등 초창기 이탈리아 축구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영국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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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의 분홍색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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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츠 카운티의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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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의 변신!

+ 이탈리아의 축구 클럽 유벤투스(Juventus)의 그 유명한 흑백 줄무늬 유니폼은 노츠 카운티에서 가져온 것이다. 유벤투스는 원래 물방울 무늬의 분홍색 유니폼(당시는 분홍색이 싸게 먹혔다)에 검은색 타이(!)를 사용했는데, 빨래를 하면 할수록 색이 바래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1903년 유벤투스는 유니폼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유벤투스는 팀 메니저였던 잉글랜드인 존 새비지에게 새 유니폼을 구해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고, 우연의 일치로 새비지의 노팅엄에 살던 친구가 노츠 카운티의 서포터였는데, 노츠 카운티의 흑백 줄무늬 유니폼을 토리노로 보내온 것이다(참고로 노츠 카운티의 연고지는 버밍엄이다). 그리하여 유벤투스가 지금까지 흑백 줄무늬 유니폼을 유지하고 있다. (출처는 Wikipedia: Notts County F.C.)

1970년대 들어 바야흐로 바이에른 뮌헨의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다. 사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바이에른 뮌헨은 지역 라이벌팀인 1860 뮌헨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분데스리가 출범 당시 한 연고지에 한 팀만 인정한다는 독일축구협회의 결정에 따라 바이에른은 1860 뮌헨에 밀려 분데스리가 원년 멤버에 끼지도 못했고, 2년 후에야 1부 리그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1860 뮌헨이 무관심 속에 방치한 세 명의 선수(뮬러, 베켄바워, 마이어)를 재빠르게 영입하면서 바이에른은 일대 혁명을 맞이하게 됐다. (26~7쪽)

스페인에 처음으로 축구가 유입된 것은 19세기 말 무렵으로 바스크 지방의 광산에 작업을 하러 온 영국인 광부들을 통해서였다. (…) 영국인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에 의해 설립된 아틀래틱 빌바오는 그 당시 영국 최고의 클럽이었던 선더랜드(Sunderland)를 늘 선망했고, 이 때문에 선더랜드의 유니폼을 본뜬 붉은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스페인 무대를 호령했었다.
1899년에는 스위스 국가대표였던 감퍼(Joan Gamper)에 의해 FC 바르셀로나가 창단되었으며, 여기에 자극을 받아 얼마 후에는 같은 도시에 에스파뇰(Espanyol)이 창단됐다. 팀 이름이 '스페인'을 뜻하는 에스파뇰은 외국인에 의한 축구팀 창단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스페인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클럽이었다. (36~7쪽)

국내 리그 출발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잉글랜드는 선구자였다. 1872년 글래스고에서 벌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경기는 세계 최초의 A매치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이후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에 지나치게 고무된 잉글랜드는 반세기 동안 자신들이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외국 팀들과 경기하길 꺼렸고 1950년까지는 월드컵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46쪽)
+ 1872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시합은 역사상 최초의 국가간 A매치로 공인되고 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이 맞붙은 것이다. 시합은 1872년 11월 30일, 스코틀랜드 파틱에 위치한 서스코틀랜드 크리켓 클럽의 경기장인 해밀튼 크레센트에서 벌어졌다. 시합은 0-0 무승부로 끝났고 약 4천명의 관중이 지켜보았다. (출처는 Wikipedia: Scotland v England (1872))

여기까지는 '제1부 유럽의 명 리그'의 내용이고, 세리에 A, 분데스리가, 프리메라리가, 프리미어리그가 차례대로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2부의 제목은 '라이벌 열전'이다. 레인저스와 셀틱, AC 밀란과 인터 밀란, 아스날과 토트넘, 올림피끄 마르세유와 파리 생제르망이 소개된다. 특이한 점은 분데스리가와 프리메라리가의 라이벌은 언급하지 않는 대신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르 샹피오나의 라이벌이 소개되고 있는 점이다. '라이벌'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바이에른 뮌헨과 1860 뮌헨,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관계가 1부에 대충 서술되어 있다는 점을 의식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2부에서 소개된 내용 중 몰랐던 점을 적어보자.

레인저스와 셀틱 중 먼저 창설된 쪽은 레인저스였다.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근대적 축구의 시작과 함께'라고 말해도 좋을 1872년에 설립된 레인저스(Rangers)는 유럽에서도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클럽 중의 하나였다. (…) 당시 잉글랜드에서 처음 시작된 축구는 그때까지만 해도 드리블 위주의 경기였지만 글래스고에서는 진흙탕이나 다름없는 경기장의 조건 때문에 이러한 축구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자연스레 레인저스의 선수들은 드리블이 아닌 패스 위주의 경기를 해야 했고, … 레인저스는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축구 클럽이자 근대 축구에 패스를 도입한 선각자로서의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셀틱(Celtic)은 같은 도시 동부에 모여 살던 아일랜드계 노동자들이 만든 축구 클럽이었다. 당시 글래스고에는 조선업이 한창이었던 관계로 아일랜드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건너왔는데 이들은 스코틀랜드인들과 상이한 문화와 종교로 인해 많은 갈등을 겪어왔던 터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들은 축구팀에 켈트족의 후예임을 표방하는 셀틱이라는 이름을 쓰고, 아일랜드 국기를 상징하는 녹색와 흰색의 유니폼을 채택했다. 이렇게 해서 셀틱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클럽이 됐다. 1887년 결성된 셀틱은 그 이듬해인 1888년 5월 28일 창설 후 첫 경기를 치르게 되었는데, 상대는 바로 같은 도시 서부에 위치한 레인저스였다. 동부의 셀틱과 서부의 레인저스가 격돌한 이 경기에서 셀틱은 5-2로 승리하면서 세계 최장의 라이벌전이 시작된다. (59~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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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인저스와 셀틱의 더비전을 일컬어 올드 펌(Old Firm)이라고 한다. RangersFansVCelticFans.com이란 사이트가 있는데 여기 들어가보면 글래스고 레인저스와 글래스고 셀틱의 역사와 기본 정보들이 아기자기하게 비교되어 있다.

여기까지다. 모르는 것 투성이다. 특히 초창기의 축구 역사나 빅 리그 이외의 사실들은 여전히 문외한이라는 데서 뼈아픈 반성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 역시 유럽 축구 위주의 서술이라는 한계를 '당연하게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축구의 문화사"인데, 더 정확하게는 "유럽 축구의 문화사"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유럽 축구, 그 중에서도 빅 리그, 또 그 중에서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엄청난 자본력으로 세계 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건 사실이고, 우리나라의 축구 문화도 그런 사실에 별로 예외적이진 않다. 맨유는 놀라운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아스날이나 리버풀, 첼시 등의 팬은 많이 있어도 예를 들어 아스톤 빌라나 웨스트햄, 에버튼 등의 팬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잉글랜드 이외의 예를 들어봐도 FC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AC 밀란, 인테르나치오날레 등의 팬은 간간히 있으나 그 이외의 클럽의 팬은 좀처럼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예외적으로 알고 있는 사례 중 하나는 발렌시아의 팬이 운영하는 블로그다.) 이런 사실을 팬들의 과문 탓으로 돌리는 건 잘못이다. 뭘 보고 경험해야 팬이 될 것 아닌가. 그런데 기껏 우리가 보아온 축구라곤 K리그와 우리나라 국대 경기 이외에 도대체 뭐가 있는가? 스포츠 뉴스 말미에 짧게 소개되곤 했던 해외 축구의 인상적인 모습만으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나마 최근 몇 년 사이에 박지성, 이영표 등의 활약상을 생중계로 지켜볼 수 있게 됐고, 또 프리메라리가와 세리에 A, 그리고 에레디비지에의 유명한 팀들의 경기를 볼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여전히 FC 포르투의 경기나 올드 펌, 베르더 브레멘이나 샬케 04, 페네르바체, 올림피아코스 등의 경기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세계 축구계의 양대 축이라는 남미 축구는 또 어떤가. 또 슈퍼스타 베컴이 진출해 있는 MLS는 어떤가.


덧- 문화의 집중, 편중 현상은 비유하자면 사람이 편식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나도 토트넘과 FC 바르셀로나의 팬이지만, 좀더 외연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이다. 일단은 셀틱이 맘에 든다.

덧2- 이 책은 오타의 밭이다. 연도의 오류도 간간히 보이고, 아무튼 읽는 데 좀 짜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