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큰Taken (피에르 모렐Pierre Morel, 2008)
공홈: http://www.taken-lefilm.com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Taken_%28film%29
아일랜드의 영웅이자 혁명가였던 마이클 콜린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있다.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란 작품인데 나온지 벌써 10년도 더 된 영화다. 어렸을 때는 좋았는데 점점 별로라고 생각하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 역을 맡은 이가 리암 니슨Liam Neeson이었다. 엊그제 영화 <테이큰Taken>(2008)을 보는데 리암 니슨이 어디 나온 배우였는지 알듯말듯한 게 너무 궁금했다. 확인해보니, 이런 제길슨. 내 기억력은 고작 이 정도였나. 영화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에서 주인공 '쉰들러' 역할도 맡았다는데 역시 기억이 잘 안 난다. 음, 그가 그였나? 그러니까 거기에 나온 그가 여기에 나온 그란 말인가? 가가 가가?
우리의 제이슨 본Jason Bourne이 십수년이 지나 은퇴하면 저런 모습이겠거니 할 법한 브라이언Bryan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당근 리암 니슨이 그 역할을 맡았다). 본처럼 브라이언도 문무를 겸비한 이 시대의 액션-활극 히어로 되겠다. 안타까운 건 이 양반이 직업상(인지 아닌지 전처만이 알겠지만) 이혼을 당했다는 것. 그래서 끔찍히도 사랑하는 딸 킴(Kim, <로스트>에 나왔다는 메기 그레이스Maggie Grace)을 자주 못 보는 게 서글픈, 가끔 옛 친구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중년의 한가로운 인생이다. 그러던 어느날, 킴이 전처를 대동하고 찾아와서는, 파리로 여행을 갈테니 서류에 사인을 해달라고 한다(난 이 장면이 이해가 안 된다. 문화적 차이?). 브라이언은 세상 꼴이 더럽다는 걸 익히 알고 있는 바, 미성년자인 킴의 여행이 -- 비롯 친구 아만다가 동행하지만 -- 걱정될 뿐이다. 그렇다고 자식 이기는 부모 보았나? 결국 유유자적 프랑스로 떠난다. 그리고, 파리에서 킴과 아만다는 거대 매매춘 조직에 납치되는데...
영화의 리듬은 뤽 베송의 이름이 보증하듯이, 빠르고 심플하다. 딸은 순식간에 납치되고 브라이언은 순식간에 격노하여 파리로 날아가 온 사방팔방을 뒤집어엎는다. 마치 본 시리즈의 구성을 참고한 것처럼, 미국의 비밀요원이 유럽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본이 전 유럽을 유랑하지만, 브라이언은 파리에 집중한다는 것 정도?) 이 영화는 거의 대부분 영어를 사용한다. 프랑스인이 각본을 쓰고 제작을 맡았으며 역시 프랑스인이 감독을 맡았으며 프랑스 제작사(Europa Corp)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주인공이 미국인이고 대사의 대부분이 영어다. 이건 뤽 베송의 전략인가? 할리우드에 맞서기 위한 몸부림? 미국에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모르겠다. 허나 내가 프랑스인이라면 조금 불편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특히나 알바니아계 프랑스인이라면 더더욱.
영화에서 그려지는 불법 매매춘 조직은 '6~7년전 파리로 기어 들어온 알바니아 악당 무리들'로 설명된다. 알바니아Republic of Albania(알바니아어로는 Republika e Shqipërisë)? 어디 붙어있는 나란겨? 구소련 지역? 아님 아프리카 어디쯤?
알바니아는 발칸반도에 위치한 작은 나라다. "유럽에서 유일한 이슬람 국가로 종교인의 약 70%가 무슬림"(위키백과: 알바니아)이라고 설명된다. '유럽에서 유일한 이슬람 국가'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조금 과장된 설명이고, 무슬림이 과반을 차지하는 유일한 유럽 국가 정도 되겠다. 물론 이것은 이슬람 국가인 터키와 알바니아계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얼마 전에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를 제외해야 한 이야기다. (서남부 보스니아와, 러시아의 코카서스 지방 그리고 볼가강 유역도 이슬람권에 속한다고 한다.1 게다가 알바니아는 2차대전 이후 오랫동안 공산국가였다. 미국과 영국의 이해가 걸린 그리스의,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바로 윗 나라가 무려 50여년 간 공산주의 체제였다! 게다가 이슬람 국가이기도 하다! 이 정도만 해도 알바니아의 국제적 위상(?)을 충분히 알 만하다. 그리고 우리의 선입견을 총동원해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알바니아는 가난하다. 그래서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지로 알바니아 사람들이 많이들 나가 있다. 유럽 내의 빈국이 겪는 설움이랄까. 알바니아의 정치적 위치도 보잘 것 없는 건 매한가지여서 얼마 전에야 NATO 가입이 승인됐고, EU에는 잠재적 후보군으로 분류돼있다(언제 회원국이 될 지 며느리도 모른다는 거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왜 <테이큰>은 알바니아계를 악당으로 설정했느냐 하는 점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그리스나 이탈리아의 영화에서 알바니아계가 악당으로 그려지는 일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프랑스에 가있는 알바니아계 노동자는 그리스나 이탈리아에 비해선 훨씬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인신매매를 통한 불법 매매춘이라는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자행하는 집단이 바로 알바니아계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잠깐 등장하는 알바니아계 전직 교사라는 친구도 이상한 캐릭터다. 그는 우연히 브라이언의 첩보를 도와주고 돈을 받는데, 그는 동유럽권의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지성인 중의 지성인이다. 그가 어떤 연유로 파리까지 건너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한다는 일이 생전 처음 보는 미국인에게 통역 몇 마디 해주고 개무시당하는 것이다. 편견도 이런 편견이 있나? 알바니아의 지성인 쯤은 파리의 나부랭이만도 못하는 생각이 나는 불편하다.
내가 프랑스인도 아니고 프랑스에 가본 적도 없어서 어떻게 알겠냐만은, 뤽 베송이 알바니아계를 악당으로 설정한 건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일단 생소하고 또 자신들과는 이념과 종교가 많이 다르다는 선입견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우파 사르코지의 집권으로 더욱 노골화된,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분위기도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수많은 아랍계(특히 지네딘 지단으로 상징되는 알제리인)나 몇 해 전에 파리 시내에서 폭동을 일으켰던 흑인을 악당으로 설정하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악당 중에 똘마니 정도의 역할로 흑인이나 아랍계가 잠깐 나오기는 한다). 그렇다고 생소한 아시아계나 남미계로 설정하긴 더더욱 꺼려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엄하게도 프랑스하고는 그다지 큰 인연이 없는 알바니아가 스크린 속에서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워라, 알바니아여.
이 영화의 플롯은 간단하다. 무적의 주인공이 납치된 딸을 구출하는 거다. 관객은 다 알고 있다. 브라이언이 초인적 능력을 발휘해 킴의 언저리까지 도달한 뒤 한두 번의 위기를 극복하고 딸을 구할 것이란 사실을. 그러나 <테이큰>이 놓치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멋진 주인공만큼이나 매력적인 안티-히어로가 있어야 영화가 풍성해진다는 점이다. '본 시리즈'를 보라. 주인공을 궁지에 몰아넣고 저들끼리 헤쳐먹겠다는 고위직 악당들, 얼마나 매력적인가. <테이큰>의 악당들은 너무나 허술하고 보잘 것 없어서 심심하기까지 하다. 어찌하였든 이 영화는 그저 단순한 오락영화라 보는 게 현명할 것이다. 왜 악당들이 하필이면 알바니아계고 악당 중 한 명을 취조할 때 꼭 전기고문까지 자행해야 하며 강제로 마약에 쩔은 여인들의 비참한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지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이로울 지 모른다. (고승덕의 표현을 빌리면) 양념에 불과할 만큼 사소하게 다뤄지는 파리 경찰국 수뇌부의 부패 실상도 눈 감으면 잊혀질만한 거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나는 알바니아계를 바라보는 프랑스 내부의 시선이, 굳이 '그들 안의 뒤틀린 옥시덴탈리즘'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온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테이큰>을 보면서 동남아 이주노동자를 동물 대하듯이 하는 우리네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면 이상한 공상일까? 피부가 거무튀튀한 어떤 개인이 저지른 범죄를 두고 모든 이주노동자를 매도하며 저주와 악담을 퍼붓는 우리네 모습은 뤽 베송의 치졸한 인식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알바니아 출신으로 프랑스에 망명 중인 세계적인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Ismail Kadare가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부서진 사월]] 등 카다레의 작품은 국내에도 여럿 번역돼있다. 최근에는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가 번역·출간됐다)? 또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대활약하고 있고 알바니아 국대인 로릭 카나Lorik Cana가 이 영화를 본다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생판 모르는 미국인한테 난도질 당하는 장면이 계속되는데, 분노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딱 한 장면, 브라이언이 도청할 때 나오는 알바니아의 음성(배탈이 났는데 할머니의 약손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제외하면 알바니아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강탈자요 무법자로 그려지고 있는 영화가 바로 <테이큰>이다. 게다가 그들은 프랑스의 부르주아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납치는 가난뱅이 알바니아가, 소비는 고귀하고 부유하신 프랑스가! 조금은 잔인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참 괜찮은 액션 영화일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점들이 이 영화가 껄끄러운 이유이다. 악당을 설정하려면 좀 합리적이고 말썽이 일어날 소지가 없을만한 대상을 물색하란 말이다!
(5월 15일 00:15에 소폭 수정함.)
공홈: http://www.taken-lefilm.com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Taken_%28film%29
아일랜드의 영웅이자 혁명가였던 마이클 콜린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있다.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란 작품인데 나온지 벌써 10년도 더 된 영화다. 어렸을 때는 좋았는데 점점 별로라고 생각하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 역을 맡은 이가 리암 니슨Liam Neeson이었다. 엊그제 영화 <테이큰Taken>(2008)을 보는데 리암 니슨이 어디 나온 배우였는지 알듯말듯한 게 너무 궁금했다. 확인해보니, 이런 제길슨. 내 기억력은 고작 이 정도였나. 영화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에서 주인공 '쉰들러' 역할도 맡았다는데 역시 기억이 잘 안 난다. 음, 그가 그였나? 그러니까 거기에 나온 그가 여기에 나온 그란 말인가? 가가 가가?
우리의 제이슨 본Jason Bourne이 십수년이 지나 은퇴하면 저런 모습이겠거니 할 법한 브라이언Bryan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당근 리암 니슨이 그 역할을 맡았다). 본처럼 브라이언도 문무를 겸비한 이 시대의 액션-활극 히어로 되겠다. 안타까운 건 이 양반이 직업상(인지 아닌지 전처만이 알겠지만) 이혼을 당했다는 것. 그래서 끔찍히도 사랑하는 딸 킴(Kim, <로스트>에 나왔다는 메기 그레이스Maggie Grace)을 자주 못 보는 게 서글픈, 가끔 옛 친구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중년의 한가로운 인생이다. 그러던 어느날, 킴이 전처를 대동하고 찾아와서는, 파리로 여행을 갈테니 서류에 사인을 해달라고 한다(난 이 장면이 이해가 안 된다. 문화적 차이?). 브라이언은 세상 꼴이 더럽다는 걸 익히 알고 있는 바, 미성년자인 킴의 여행이 -- 비롯 친구 아만다가 동행하지만 -- 걱정될 뿐이다. 그렇다고 자식 이기는 부모 보았나? 결국 유유자적 프랑스로 떠난다. 그리고, 파리에서 킴과 아만다는 거대 매매춘 조직에 납치되는데...
영화의 리듬은 뤽 베송의 이름이 보증하듯이, 빠르고 심플하다. 딸은 순식간에 납치되고 브라이언은 순식간에 격노하여 파리로 날아가 온 사방팔방을 뒤집어엎는다. 마치 본 시리즈의 구성을 참고한 것처럼, 미국의 비밀요원이 유럽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본이 전 유럽을 유랑하지만, 브라이언은 파리에 집중한다는 것 정도?) 이 영화는 거의 대부분 영어를 사용한다. 프랑스인이 각본을 쓰고 제작을 맡았으며 역시 프랑스인이 감독을 맡았으며 프랑스 제작사(Europa Corp)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주인공이 미국인이고 대사의 대부분이 영어다. 이건 뤽 베송의 전략인가? 할리우드에 맞서기 위한 몸부림? 미국에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모르겠다. 허나 내가 프랑스인이라면 조금 불편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특히나 알바니아계 프랑스인이라면 더더욱.
영화에서 그려지는 불법 매매춘 조직은 '6~7년전 파리로 기어 들어온 알바니아 악당 무리들'로 설명된다. 알바니아Republic of Albania(알바니아어로는 Republika e Shqipërisë)? 어디 붙어있는 나란겨? 구소련 지역? 아님 아프리카 어디쯤?
알바니아는 발칸반도에 위치한 작은 나라다. "유럽에서 유일한 이슬람 국가로 종교인의 약 70%가 무슬림"(위키백과: 알바니아)이라고 설명된다. '유럽에서 유일한 이슬람 국가'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조금 과장된 설명이고, 무슬림이 과반을 차지하는 유일한 유럽 국가 정도 되겠다. 물론 이것은 이슬람 국가인 터키와 알바니아계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얼마 전에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를 제외해야 한 이야기다. (서남부 보스니아와, 러시아의 코카서스 지방 그리고 볼가강 유역도 이슬람권에 속한다고 한다.1 게다가 알바니아는 2차대전 이후 오랫동안 공산국가였다. 미국과 영국의 이해가 걸린 그리스의,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바로 윗 나라가 무려 50여년 간 공산주의 체제였다! 게다가 이슬람 국가이기도 하다! 이 정도만 해도 알바니아의 국제적 위상(?)을 충분히 알 만하다. 그리고 우리의 선입견을 총동원해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알바니아는 가난하다. 그래서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지로 알바니아 사람들이 많이들 나가 있다. 유럽 내의 빈국이 겪는 설움이랄까. 알바니아의 정치적 위치도 보잘 것 없는 건 매한가지여서 얼마 전에야 NATO 가입이 승인됐고, EU에는 잠재적 후보군으로 분류돼있다(언제 회원국이 될 지 며느리도 모른다는 거다).
알바니아여, 내가 괜히 미안하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왜 <테이큰>은 알바니아계를 악당으로 설정했느냐 하는 점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그리스나 이탈리아의 영화에서 알바니아계가 악당으로 그려지는 일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프랑스에 가있는 알바니아계 노동자는 그리스나 이탈리아에 비해선 훨씬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인신매매를 통한 불법 매매춘이라는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자행하는 집단이 바로 알바니아계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잠깐 등장하는 알바니아계 전직 교사라는 친구도 이상한 캐릭터다. 그는 우연히 브라이언의 첩보를 도와주고 돈을 받는데, 그는 동유럽권의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지성인 중의 지성인이다. 그가 어떤 연유로 파리까지 건너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한다는 일이 생전 처음 보는 미국인에게 통역 몇 마디 해주고 개무시당하는 것이다. 편견도 이런 편견이 있나? 알바니아의 지성인 쯤은 파리의 나부랭이만도 못하는 생각이 나는 불편하다.
내가 프랑스인도 아니고 프랑스에 가본 적도 없어서 어떻게 알겠냐만은, 뤽 베송이 알바니아계를 악당으로 설정한 건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일단 생소하고 또 자신들과는 이념과 종교가 많이 다르다는 선입견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우파 사르코지의 집권으로 더욱 노골화된,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분위기도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수많은 아랍계(특히 지네딘 지단으로 상징되는 알제리인)나 몇 해 전에 파리 시내에서 폭동을 일으켰던 흑인을 악당으로 설정하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악당 중에 똘마니 정도의 역할로 흑인이나 아랍계가 잠깐 나오기는 한다). 그렇다고 생소한 아시아계나 남미계로 설정하긴 더더욱 꺼려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엄하게도 프랑스하고는 그다지 큰 인연이 없는 알바니아가 스크린 속에서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워라, 알바니아여.
이 영화의 플롯은 간단하다. 무적의 주인공이 납치된 딸을 구출하는 거다. 관객은 다 알고 있다. 브라이언이 초인적 능력을 발휘해 킴의 언저리까지 도달한 뒤 한두 번의 위기를 극복하고 딸을 구할 것이란 사실을. 그러나 <테이큰>이 놓치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멋진 주인공만큼이나 매력적인 안티-히어로가 있어야 영화가 풍성해진다는 점이다. '본 시리즈'를 보라. 주인공을 궁지에 몰아넣고 저들끼리 헤쳐먹겠다는 고위직 악당들, 얼마나 매력적인가. <테이큰>의 악당들은 너무나 허술하고 보잘 것 없어서 심심하기까지 하다. 어찌하였든 이 영화는 그저 단순한 오락영화라 보는 게 현명할 것이다. 왜 악당들이 하필이면 알바니아계고 악당 중 한 명을 취조할 때 꼭 전기고문까지 자행해야 하며 강제로 마약에 쩔은 여인들의 비참한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지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이로울 지 모른다. (고승덕의 표현을 빌리면) 양념에 불과할 만큼 사소하게 다뤄지는 파리 경찰국 수뇌부의 부패 실상도 눈 감으면 잊혀질만한 거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나는 알바니아계를 바라보는 프랑스 내부의 시선이, 굳이 '그들 안의 뒤틀린 옥시덴탈리즘'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온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테이큰>을 보면서 동남아 이주노동자를 동물 대하듯이 하는 우리네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면 이상한 공상일까? 피부가 거무튀튀한 어떤 개인이 저지른 범죄를 두고 모든 이주노동자를 매도하며 저주와 악담을 퍼붓는 우리네 모습은 뤽 베송의 치졸한 인식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알바니아 출신으로 프랑스에 망명 중인 세계적인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Ismail Kadare가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부서진 사월]] 등 카다레의 작품은 국내에도 여럿 번역돼있다. 최근에는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가 번역·출간됐다)? 또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대활약하고 있고 알바니아 국대인 로릭 카나Lorik Cana가 이 영화를 본다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생판 모르는 미국인한테 난도질 당하는 장면이 계속되는데, 분노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딱 한 장면, 브라이언이 도청할 때 나오는 알바니아의 음성(배탈이 났는데 할머니의 약손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제외하면 알바니아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강탈자요 무법자로 그려지고 있는 영화가 바로 <테이큰>이다. 게다가 그들은 프랑스의 부르주아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납치는 가난뱅이 알바니아가, 소비는 고귀하고 부유하신 프랑스가! 조금은 잔인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참 괜찮은 액션 영화일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점들이 이 영화가 껄끄러운 이유이다. 악당을 설정하려면 좀 합리적이고 말썽이 일어날 소지가 없을만한 대상을 물색하란 말이다!
(5월 15일 00:15에 소폭 수정함.)
- Today, the only remaining majority-Muslim regions in Europe are Kosovo, Albania, western/southern Bosnia, the region of Istanbul within Europe and some Russian republics in Northern Caucasus and the Volga region. Wikipedia: Islam in Europe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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